리노이에 모토히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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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이에 모토히로'''({{llang|ja|李家元宥, りのいえ もとひろ [[1589년]] ~ [[1647년]])는 [[조선]] 출신 [[일본]]의 의사로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던 전라도병마절도사 [[이복남]]의 셋째 아들이다. 본명은 이경보(李慶甫)이며, 이성현(李聖賢)이라는 이름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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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변경|리노이에 모토히로}}
 
정유재란 중 남원성 공방전에서 모리 가문의 부장 아소누마 모토노부(阿曾沼元信) 군에 잡혀 [[일본]]에 끌려갔다. 그 뒤 [[조슈 번]]에 정착해, 성을 리노이에(李家)로 개성했으며, 번주 [[모리 데루모토]]의 모토(元)를 사성받아 모토히로(元宥)로 개명하였다. 일본의 의학서 《방장의학사(防長醫學史)》에 따르면, 그의 장남과 차남과 함께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ref>출처 동양의학 대사전 제8권(1999, 경희대학교 출판국)</ref> 또,《[[하기 번]] 제가계보(萩藩諸家系譜)》에 따르면, 리노이에 가문은 조선 왕족의 지류로 후대 받아 복록 500석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아울러 리노이에 모토히로는 리노이에 씨(李家氏)의 시조이다.<ref>[http://dangodazo.blog83.fc2.com/blog-entry-42.html 역사작가 기리노 사쿠진의 블로그]</ref>
'''이가원유'''(李家元宥, 1590 -?)는 [[조선]] 출신 [[일본]]의 의사이다. [[강원도]] 강릉 출신. 장군 [[이복남]]의 셋째 아들이다. 본명은 이경보(李慶寶).
 
[[1598년]] 8세의 어린 나이에 [[고니시 유키나카]]에 의해 포로로 [[일본]]에 끌려갔다. 그뒤 일본 [[조슈 번]]에 정착, 성을 이가씨로 이름을 원유로 개명하고 의사로서 일생을 마쳤다.
 
{{토막글|사람}}
 
== 주석 ==
<references/>
== 같이 보기 ==
* [[여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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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남]]
 
[[분류:1590년1589년 태어남]]
[[분류:1647년 죽음]]
[[분류:조선 사람]]
[[분류:일본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