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행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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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 = [[2007년]] [[6월 8일]]
}}
'''화성행궁''' (華城行宮)은 [[조선 정조|정조]]가 능원에 참배할 때 머물던 임시 처소로서, 평소에는 부사(府使) 또는 유수(留守)가 집무하던 곳으로 활용되던 [[행궁]]이다. [[1789년]](정조 13년) 수원 신읍치 건설 후 팔달산 동쪽 기슭에 건립되었다. 576칸으로 정궁(正宮) 형태를 이루며 국내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지만 [[일제 강점기]] 낙남헌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일제의 민족문화와 역사 말살 정책으로 파괴되었고, 1980년대 말 뜻있는 지역 시민들이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꾸준하고 적극적인 복원운동을 펼친 결과 화성축성 200주년인 1996년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마침내 482칸으로 1단계 복원이 완료, 2003년 10월 일반에게 공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s://www.suwon.go.kr/web/visitsuwon/hs02/pages.do?seqNo=55|제목=화성행궁 : 수원관광 (HOME) > 수원화성 > 화성행궁|확인날짜=2019-10-29}}</ref> 현재 우화관과 별주, 장춘각을 비롯한 나머지 94칸에 대한 2단계 복원이 진행 중이다. 정조는 1789년 10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을 옮긴 이후 1800년(정조 24년) 1월까지 12년 간 13차례에 걸쳐 화성에 행차했고, 이때마다 행궁에 머물렀다.<ref name=":0">{{웹 인용|url=https://www.suwon.go.kr/web/visitsuwon/hs02/pages.do|제목=화성행궁 : 수원관광 (HOME) → 수원화성 → 화성행궁|언어=ko|확인날짜=2018-11-08}}</ref>
 
[[경기도기념물]] 65호로 지정되어 있다가, 2007년 6월 8일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ref>{{웹 인용|url=http://gwanbo.mois.go.kr/ezpdf/customLayout.jsp?contentId=00000000000000001319077483956000&tocId=00000000000000001319077488968000&isTocOrder=N&name=%EB%AC%B8%ED%99%94%EC%9E%AC%EC%B2%AD%EA%B3%A0%EC%8B%9C%EC%A0%9C2007-36%ED%98%B8(%EA%B5%AD%EA%B0%80%EC%A7%80%EC%A0%95%EB%AC%B8%ED%99%94%EC%9E%AC%5B%EC%82%AC%EC%A0%81%5D%EC%A7%80%EC%A0%95)|제목=문화재청고시제2007-36호(국가지정문화재[사적]지정)|성=|이름=|날짜=2007년 7월 8일|웹사이트=|출판사=대한민국 관보|확인날짜=2019-10-29}}</ref>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11시부터 30분 동안 [[무예24기 보존회]]가 무예 시범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