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소불: 두 판 사이의 차이

111 바이트 제거됨 ,  2년 전
잔글
편집 요약 없음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1번째 줄:
'''알베르 마리위스 소불'''({{llang|fr|Albert Marius Soboul}}, [[1914년]] [[4월 27일]] ~ [[1982년]] [[9월 11일]])은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연구의 권위자이다.
 
== 초기 삶 ==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소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태어난 해 11월에 아버지를 [[1차 대전]] 중에 잃었다. [[1922년]]에 어머니마저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큰어머니가 사는 프랑스의 [[님 (도시)|님]]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를 마친 뒤 님의 알퐁스 도데 학교({{lang|fr|Lycée Alphonse Daudet}}), 몽펠리에 학교를 거쳐 [[1931년]]에 명문인 루이 르그랑 학교({{lang|fr|le lycée Louis le Grand}})에 입학했다. 이후 [[소르본]]에 있는 [[파리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 2차 대전 ==
12번째 줄:
독일의 점령기가 끝난 후, 몽펠리에의 고등학교에서 다시 교사 생활을 한다. 이후 마르셀랭 베르틀로 학교(({{lang|fr|Lycée Marcellin Berthelot}})와 [[앙리 4세]] 학교({{lang|fr|Lycée Henri IV}})로 옮겨다니며 교사 생활을 계속한다. 이때 유명한 역사가인 [[조르주 르페브르]](Georges Lefebvre)와 친하게 되어, 그의 지도로 1100 페이지에 달하는 〈혁명력 2년의 파리 [[상퀼로트]]({{lang|fr|''Les sans-culottes parisiens en l'an II''}})〉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한다. [[1958년]]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클레르몽페랑]] 대학교로 진출하게 된 소불은 [[1967년]]에 [[파리 대학교]]의 프랑스 혁명사 강좌 주임이 된다.
 
학교행정에 비판적이고 대중운동에 공감했던 소불은 [[1979년]]에 65세가 되어 정년퇴임하게 되었다. 이때 2차 대전 당시 비시 정부에 의해 해임된 기간 동안의 근무 년한 연장을 신청하였으나 학교와의 관계가 원만치 못해 거절당했다. 이후 명예교수직도 수여받지 못하였다. 1982년 9월 11일 님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다. 사후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죽은 뒤 [[파리 코뮌]]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곳에서 멀지 않은 [[페르 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 평가 ==
이후 15년간 그는 수많은 역사 저술을 출판하였다. 대표적으로는 세 권으로 구성된 《문명과 프랑스 혁명({{lang|fr|''La Civilisation et la Révolution française''}})》(1970)과 《[[프랑스 대혁명사]](({{lang|fr|''Précis d'histoir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1962)가 있다. 소불의 [[계급투쟁]]적 시각에 대해서 [[수정주의 역사학]] 역사가들이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1982년]]에 죽었지만, 그의 역사 철학은 [[아래로부터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