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키 진자부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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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일본 육군사관학교|일본 육사]] 교장 시절에는 존황 절대주의 (尊皇絶對主義) 의 훈육에 노력해 후에 [[2.26 사건]]의 주모자가 되는 안도 데루조 (安藤 輝三), 이소베 아사이치 (磯部 浅一) 등을 배출해냈다. [[1932년]] 참모 차장이 된 후에는 [[아라키 사다오]] 일본 육군 대신과 함께 국가 혁신을 도모하는 황도파를 형성하였다. <ref> 《세상의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일본편)》194쪽</ref> 세력의 확대를 도모해 중견 장교들의 신망을 책임졌지만, 후에 당파적인 행동이 반발을 사 통제파의 등장을 야기시켰다. 직위는 참모 차장이었지만, 당시 일본의 참모 총장이었던 [[:ja:閑院宮載仁親王|간닌 고토히토 친왕]] 아래에서 사실상 참모 총장으로서 참모본부를 움직였고, [[만주 사변]]에서는 세력 확대를 주장했다.
[[1934년]]에는 [[:ja:教育総監|교육 총감]]으로 취임해 [[천황기관설]] 문제에선 국체명징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천황기관설을 공격하였다. 이 흐름을 염려해 일본 육군의 개혁을 단행하려고 한 [[오카다 게이스케|오카다]] 내각의 [[하야시 센주로]] 일본 육군 대신과 일본 육군성
이후 육군의 개혁에 반발한 [[황도파]]의 청년 장교들에 의해 [[2·26 사건]]이 일어났고<ref>《세상을 뒤바꾼 책사들의 이야기 (일본편)》195쪽~196쪽</ref>, 마사키 자신은 이 사건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나, 진위는 분명하지 않다. 반란의 주모자인 안도 아키라와 아소베 아사이치 등의 실행 지지와 받아들이는 태도를 사건 전부터 나타내었고, 내각 조성 명령을 기대하면서 행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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