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Wybot (토론 | 기여)
잔글 Robot: Automated text replacement (-[[Category +[[분류)
14번째 줄:
소아시아의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그는 비잔티움의 후계국을 세웠고 비잔티움 재건의 중요한 거점을 삼았다. 테오도루스는 처음부터 황제라고 칭하지 못했는데 [[1203년]]에 도망친 장인 황제 알렉시우스가 아직 살아있었고 [[라틴 제국]]의 위협이 눈앞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니케아]]에는 대관식을 치뤄줄 [[총대주교|총대주교좌]]도 없었다. 테오도루스는 새로운 나라를 모두 비잔티움과 동일하게 만드는데 노력했다. [[1206년]]에야 그는 황제를 선포하였고 총대주교를 초청하여 [[1208년]]에 대관식을 치뤘다.
 
초기에 그는 라틴제국에 패배를 거듭했는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칼로얀]]이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라틴 제국으 물리치고 [[라틴제국의 보두앵 1세|황제 보두앵]]을 사로잡았다. 테오도루스는 [[칼로얀]]과 연합하여 라틴제국에 대항했다. [[1211년]] 테오도루스의 장인이자 전임황제 알렉시우스가 [[룸 술탄국]]의 [[술탄]] 카이코루스에게로 와서 테오도루스에게 반기를 들고 자신의 황권을 주장했다. 술탄은 그해 봄 니케아의 영토로 침입하였고 테오도루스는 [[안티오키아]]안티오케이아 근처의 전투에서 카이코루스 술탄을 죽이고 승리했다. 그러나 이 틈을 이용하여 라틴 황제 [[라틴제국의 앙리]]가 공격했고 [[10월 15일]] 테오도루스는 다시 참패했다.
 
[[1214년]] 테오도루스는 라틴 황제와 평화조약을 맺고 휴전에 들어갔고 영토를 공고히 하고 [[1219년]]에는 앙리 황제의 조카 마리아와 결혼까지 했다. [[1220년]] 테오도루스는 다시 한번 라틴 제국을 공격했다.테오도루스는 [[1221년]] 11월 죽었고 니케아의 제위는 사위인 [[요한네스 3세|요한네스]]에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