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흥다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자동 찾아 바꾸기: 「게될」 to 「게 될」
태그: 되돌려진 기여
Hoto Cocoa (Bot)(토론)의 29422449판 편집을 되돌림
39번째 줄:
쩐흥다오가 이끄는 쩐 왕조의 군대는 토곤의 몽골군을 맞아서 열심히 싸웠지만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결국 수도인 탕롱성이 함락되고 태상황 태종과 인종은 겨우 탕 롱을 탈출해서 타인호아(Thanh Hoa 淸化)로 도망쳤다. 다행히도 이내 다시 전열을 수습해서 탕롱을 점령한 원군을 사방에서 공격해서 수세로 몰아넣었다. 이 때 쩐흥다오는 '''"항복을 결정하셨다면, 일단 신(臣)의 목부터 베어주소서"'''라 말했다고 한다. 이 당시 그는 《병서요략(兵書要略)》을 엮고나서 <격장사문(檄將士文)>이란 글을 지었는데, 이 글을 보면 몽골과의 전쟁에 임하는 그의 진중하고 비장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인용문|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분명히 말해둔다. 마땅히 장작더미 밑에 불을 놓아둔 위기라고 여겨야 하고, 뜨거운 국물에 데어본 사람이 찬 나물도 불면서 먹듯이 경계해야 한다. 사졸들을 훈련시키고 활쏘기를 연습시켜서 모두가 봉몽(逢蒙: 중국 신화에 나오는 명사수)이나 후예(后羿: 봉몽의 스승)같은 명사수가 되도록 해야 한다. 필렬(必烈 : 쿠빌라이)의 머리를 대궐 아래 매달고, 운남왕(雲南王 : 쿠빌라이의 아들인 토곤)의 살점을 고가(藁街 : 한나라의 수도 장안의 남문에 있던 거리, 죄인의 목을 베어 효수하는 곳이었다.)에서 썩게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의 채읍(식읍)이 길이 전해질 뿐 아니라 너희들의 봉록 또한 종신토록 주어질 것이다. 나의 권속(眷屬)들이 편안한 잠자리를 얻게 될얻게될 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처자식 또한 평생을 함께할 것이다.|}}
 
이 격문을 읽은 병사들의 사기는 다시 솟아올랐고, 1285년 6월, 다시 탕롱성을 탈환하였다. 결국 토곤은 군대를 베트남에서 철수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