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 음모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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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스버리 백작 로버트 세실은 화약음모사건을 왕권 강화와 반가톨릭 정책 수행에 이용하였다. 이때문에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오히려 샐리스백작이 음모의 배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ref name="MarshallPP187-188">{{Harvnb|Marshall|2003|pp=187–188}}</ref> 1678년 링컨 주교 토머스 바로우는 조작된 음모인 [[교황의 음모]]를 거론하며 "세실 장관이 화약음모를 조작한 것이라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 음모론에 반박하였다.<ref name="NorthcoteParkinsonp118">{{Harvnb|Northcote Parkinson|1976|p=118}}</ref> 교황의 음모는 [[티터스 와테스]]라는 사람이 지어낸 헛소문이었는데 이 역시 의회 개원일에 지하 석실을 폭발하려 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문으로 잉글랜드에 반가톨릭 광풍이 불어 여덟 명의 예수회 성직자가 처형되었다.<ref>[https://web.archive.org/web/20070523060216/http://www.companymagazine.org/v144/powder.html Names of eight Jesuit victims]</ref>
1897년
의회 건물의 지하 석실은 1678년 교황의 음모가 풍문으로 떠돌 때까지도 사유지였다. 지하석실은 오늘날에도 보존되어 있다.<ref name="NorthcoteParkinson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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