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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제도로 정착된 것은 조선 왕조에 이르러서였다. 감사(監司)·방백(方伯)·도백(道伯) 등으로 불렸는데 왕의 [[직계권]](直啓權)을 부여받아 왕과 지방을 잇는 유일하면서도 확고한 창구 역할을 하였다.
 
품계는 종2품 문관직으로 각 도마다 1명씩 설치되어, 당의 제도와 같이 병마절도사 · 수군절도사 등 무관직을 거의 겸했다. 중요한 정사에 대해서는 중앙의 명령에 따라 행하였지만, 관할 도에 대해서는 행정·사법·군사·치안 등 포괄적인 책임권을 가지고 [[사법권]] · 징세권 등을 행사하여 지방 행정상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다. 관원으로는 중앙에서 임명한 도사, 검률, 심률 등의 보좌관이 있고 일반 민정은 감영에 속한 6방의 향리가 담당케 하였다.
 
=== 관찰사 직함 ===
* 1393년([[조선 태종|태종]] 2년) 9월 13일 : 도관찰출척사로 개칭
** 당시 도관찰출쳑사의 정식 직함 : 도관찰출척사겸감창안집전수권농관학사제조형옥병마공사(都觀察黜陟士兼監倉安集轉輸勸農官學事提調刑獄兵馬公事)
* 태조, 태종, 세종 시기 : 도관찰출척사, 안렴사 혼용 시기<ref>이 시기에도 도관찰출쳑사 직함을 줄여서 '도관찰사', '관찰사' 등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이렇게 약칭한 이름이 나중에 정식 관직 명칭으로 채택되었다.</red>
* 1466년([[조선 세조|세조]] 12년) 1월 15일 : 관찰사로 개칭 ([[대한제국]] 시기까지 유지)
 
=== 관찰사 임기 ===
* 조선 초기 : 1년
* [[조선 세종|세종]] 때 : 30개월 (일시적)
* 1485년 편찬 [[경국대전]] 규정 : 360일
* 1669년([[조선 현종|현종]] 10년) 2월 8일 : 2년으로 개정
 
헤이제이 상황은 자신이 시행한 관찰사 제도를 폐지한 사가 천황에게 격노했고 이것은 [[구스코의 변]]의 한 배경이 되었다.
 
==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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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