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국민승리21: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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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정보
|국가 = 대한민국
|약칭 = 국민승리21
|이름 = 건설국민승리21
|이념 = [[사회주의진보주의]]<br/>[[민주사회주의]]<br>[[좌익 민족주의]]<br>[[진보주의]]
|스펙트럼 = [[좌익]]
|선행조직 = [[전국연합]]<br>[[진보정치연합]]<br>[[민중당 (1990년)|민중당]](개별합류)
|후계정당 =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
|배경색 = 건설국민승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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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설국민승리21'''(建設國民勝利21)은 [[1997년]]에 창당(정당 등록일은 [[11월 18일]])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으로, 약칭은 '''국민승리21'''이다.약칭은 국민승리21이다.
 
== 역사 ==
이후 [[1996년]]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을 겪은 뒤 자극받은 노동운동계와 노동운동가들이노동운동계가 [[199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서 건설국민승리21창당을 창당에 합류하였고주도하였다. 이후 [[1997년]] [[9월 7일]]에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는데, 그는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구호 아래 '기성 정치세력을 물리치고 참된 개혁과 진보의 정치를 펴자'라는 구호를 내걸 고말로 대선에 뛰어들었으며, 투표 결과 306,026표를 획득하여 1.2%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이후 국민승리21은 공동대표제를 실시하여 민주노총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과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대표를 지낸 [[이창복]]을 공동대표로 선출하였다.
=== 창당 과정 ===
[[1990년]]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진보정당인 [[민중당 (1990년)|민중당]]이 창당되었으나 선거득표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선관위에 의해 해산되었다.민중당의 해산으로 인해 민중당 창당에 참여했던 노동운동가들은 분열을 겪었으며 이들은 민중당 재건파와 [[민자당]] 입당파로 나뉘었다.이재오, 김문수 등을 위시로 한 민자당 입당파는 [[통일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김영삼]]을 따라 민자당에 입당했으며 민중당 재건파는 [[진보정치연합]]을 창당하여 재기를 노렸다.[[1995년]] 진보정치연합은 저명한 노동운동가인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표로 추대했으나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금은 노동운동.농민운동
빈민운동에 집중할 시기"라 하여 진보정치연합에 선을 그었다.이후 한국 최대 규모의 진보정치 단체인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 진보정치연합에 합류하였으나 전국연합은 당 내 노선 갈등으로 인해 진보정치연합을 탈퇴하였고, 전국연합은 건설국민승리21 창당에 회의적이었던 진보정치연합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국민승리21]] 창당에 참여하였다.결국 전국연합의 탈퇴로 세력이 위축된 [[진보정치연합]]은 노선을 바꾸어 국민승리21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199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2회 지방 선거]] 때에는 노동계와 연대하면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며, [[울산광역시]]에서 2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키는 데에 기여했다.이 외에 성남시와 전라남도에서도 노동계 무소속 후보와의 연대를 통해 기초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후 국민승리21의정당의 당원수가 급격히 증가나고늘어나고 영향력이 커지자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이후 [[1996년]]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사건을 겪은 뒤 자극받은 노동운동계와 노동운동가들이 [[199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대통령 후보를 추대하기 위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건설국민승리21 창당에 합류하였고 이후 [[1997년]] [[9월 7일]]에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권영길]]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는데, 그는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구호 아래 ' 정치세력을 물리치고 참된 개혁과 진보의 정치를 펴자'라는 구호를 내걸 고 대선에 뛰어들었으며, 투표 결과 306,026표를 획득하여 1.2%의 득표율을 기록하였다.이후 국민승리21은 공동대표제를 실시하여 민주노총의 초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과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의 대표를 지낸 [[이창복]]을 공동대표로 선출하였다.
 
[[1998년]]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2회 지방 선거]] 때에는 노동계와 연대하면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으며, [[울산광역시]]에서 2명의 기초단체장을 당선시키는 데에 기여했다.이 외에 성남시와 전라남도에서도 노동계 무소속 후보와의 연대를 통해 기초의원 당선자를 배출했다. 이후 국민승리21의 당원수가 급격히 증가나고 영향력이 커지자 [[민주노동당 (대한민국)|민주노동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 주요 선거 결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