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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학계에서는 [[춘추 시대]] 중기·후기부터 시작된 [[산시성 (섬서성)|산시성]] [[칭젠현]]의 리자야(李家崖) 문화의 동주묘(東周墓)가 하서(河西) 백적의 유적에 해당된다고 여긴다.<ref>楊建華:《陝西清澗李家崖東周墓與「河西白狄」》,載《文物與考古》,2008(5)</ref>
 
== 참고 내용 ==
희성(姬姓)은 주(周)나라 왕실 대종(大宗) 성(姓)이고, 북적(北狄)은 오랑캐 이민족란 뜻이으로, 화산(華山)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숭(崇)을 첫수도로 하는 하(夏)나라를 세운, 화하족(華夏族) 관점에서 본, 북쪽에 있는 다른 민족이란 뜻이다. 하(夏)나라를 멸망시킨 상(商)나라 첫 수도 상구(商丘)언덕은 서쪽 화산과 동쪽 다른 민족 동이족(東夷族)이 있던 동쪽 태산(太山) 사이 황하 남쪽에 세워졌고, 황하(黃夏) 이북 태행산맥 동쪽, 현재 치현에 있는 조가(朝歌)는 은허(殷墟)언덕에 세워진 상나라 마지막 수도다. 상(商)나라 시조는 설(契)이고, 화하족 하나라로 부터 자(子)아들로 불렸고, 바이칼호 아래에 있는 셀렝게 강 = 설련하(偰輦河)와 공통 글자가 있고, 계(契)맺을, 읽기도 하고, 거란(契丹), 거(契)로 읽기도 하며, 거란은 만주에 있는 북방계 민족이다. 백적(白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나중에 선(鮮)으로 불렸고, 자성(子姓)에서 파생된 기씨(箕氏) 여(餘) 분봉지가 백적 지역으로, 주(周)무왕이 상나라에 반란을 일으켜, 상나라 왕 제신을 죽이고 감옥에 있던 기자를 풀어줬을 때, 기자는 일족을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해서 정착했는데, 기자가 이동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단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하고, 단군조선 수도는 아사달이다. 조(朝)아침은 일본 말로 '아사'로 읽고, 한국 사람은 언덕에 있는 동네를 '달'동네라고 하며, 고구려 때도 언덕을 달로 지칭했다. 예맥에서 맥(貊)은 북방종족이란 뜻이고, BC300년~BC249년 연나라 침공으로 단군+조선이 요하를 뺏기면서, 만주에 세워진 부여(扶餘) 글자는 기자 이름 여(餘)와 같고, 부여에서 파생된 주몽 고구려 졸본부여는, 오녀산성 고(高)높은 지역에 있고, 부여,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溫祚)가 세운 남부여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망하고 마지막 태자가 당나라에 끌려가 왕실 성(姓) 여(餘)를 서(徐)씨로 바꾼 흔적이 공통글자에 남아있다. 연나라에 요하를 뺏기고 남하한 단군으로 여겨지는 후손은, 평양으로 왕검성 이전했고, 100년후 연나라에서 위장 귀순한 위만에 속아 평양을 뺏기고 남하 한(韓)을 세웠다는 내용이 청주한씨 상계 기록있지만, 숭조사업 일환으로 여긴다. 마한(馬韓)왕실은 북에서 남하한 백제 온조에 밀려 망했다. 백적(白狄) 글자 뜻에 있는 엄지, 맏형, 흰색, 뜻과 화하족과 대비되는 이민족 적(狄)오랑캐, 그 지역에 살던 후예들을 선(鮮)고울, 지칭했던 것, 거란이 만주에 살던 사람들이란 것, 화하족 후손으로 여겨지는 주(周)나라 왕실 성(姓) 희(姬)인것을 고려하면, 북적(北狄)이 희성(姬姓)이라는 언급은 매우 부적절한 인용이다. 희성에서 파생된 주문왕 정비 태사 10명의 아들중 위강숙(卫康叔) 봉(封)은 형인 주공 단이 삼감의 난 평정 후, 상나라를 분할 조가 지역에 위(卫=衛)나라를 세웠고 위후(衛侯)로 봉했다. 숙(叔)은 조카 주 성왕의 삼촌이란 뜻이고, 위후로 봉할 때 삼감의 난을 평정한 형 주공단이 동생 봉(封)에게 조언하는 강고(康告), 강숙(康叔), 지칭에서 위강숙 첫 부임지가 강(康)인 것을 알 수 있다. 옛날엔 성(姓)은 혈연 가족 이름, 지역 이름, 나라 이름으로 쓰였고, 맏형인 왕이 점령 지역을 분할 땅과 노예를 친족들에게 나눠줬고,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면서 새 성(姓)인 소종(小宗) 씨(氏)를 창성(創姓), 성씨 시조(始祖)가 됐고, 오늘날 까지 성씨가 전해지고 있다. 위만(衛滿)은 위(衛)나라 뿌리 희성(姬姓) 화하족 후손이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