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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_size = 200px
|caption =
|birth_date = 1875년1877년 1월 31일
|birth_place = {{국기|러시아 제국}} (오늘날 {{국기|벨라루스}}) [[마힐료우]]
|death_date = 1939년1941년 1월 31일 (64세)
|death_place =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텔아비브]]
|nationality = {{국기|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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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이 슈어'''({{llang|de|Issai Schur}}, {{IPA2|ʃuːɐ̯}}, {{llang|he|יִשַׁי שׁוּר|이샤이 슈르}}, {{llang|ru|Иса́й Шур|이사이 슈르}}, [[1875년1877년]] [[1월 31일]] ~ [[1939년1941년]] [[1월 31일]])는 [[러시아 제국]] 태생의 [[수학자]]이다. [[독일]]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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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에 [[나치 당]]이 정권을 잡고, [[반유대주의]] 정책을 펴자, 유대인인 슈어는 여러 방면으로 핍박받기 시작했다. 1933년 4월 1일은 "유대인 보이콧의 날"이었고, 이 날에 유대인 교수들은 대학교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 날, 유명한 수학자이자 열성적인 나치 당원이었던 [[루트비히 비버바흐]]는 "절친한 친구이자 동료 슈어가 오늘 참석하지 못한 것이 기쁜 오늘날의 유일한 흠이군요."라고 말했다. 1933년 4월 7일에 [[나치 독일]] 정부는 모든 유대인 교수의 강제 퇴임을 명하였고, 슈어도 퇴임 대상에 포함되었다. 동료 교수들의 거센 항의 탓에 잠시 복직되었지만, 1935년 결국 영구적으로 퇴임당했다. 세계의 다른 수학자들은 슈어를 독일에서 이민하도록 설득하였지만, 스스로를 독일인으로 여겼고, 조국에 애국심이 강했던 슈어는 이민을 강하게 반대하였다.
 
슈어는 해고된 뒤 4년 동안 버텼으나, 1939년 결국 슈어는 당시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에 속했던 [[텔아비브]]로 망명하였다 빈곤 속에서 슈어는 소유한 책들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팔아야만 했다. 2년 동안 궁핍한 생활을 계속한 뒤, 1939년1941년 65세 생일에 [[심근 경색]]으로 사망하였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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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렬:슈어, 이사이}}
[[분류:1875년1877년 태어남]]
[[분류:1939년1941년 죽음]]
[[분류:독일의 수학자]]
[[분류:20세기 수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