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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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0년 3월, 지인과 술자리를 갖고 돌아가는 길에 뇌출혈로 쓰러져 병상에 누웠다. 이후 대표이사가 교체된 [[DSP 미디어]]는 예전만큼의 위상을 보여주지 못하였다.<ref>{{뉴스 인용 |제목=오종혁의 친정 DSP는 전성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65402155494359010 |저자=정성현 |출판사=티브이데일리 |날짜=2013-04-08 |확인날짜=2018-07-23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80723152319/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365402155494359010 |보존날짜=2018-07-23 |url-status=dead }}</ref>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DSP 미디어]]가 성공한 데에는 설립자인 이호연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DSP 설립 초부터 줄곧 기업의 경영·기획 등을 비롯해 가수의 앨범 제작까지 손수 돌보며 기업의 성장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실력 있는 제작자로 유명세를 치른 후 데뷔시키는 가수마다 정상에 올려 ‘스타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하였다. 큰 부침 없이 기업의 덩치를 키워내 경영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ref name="hankyung.com">{{뉴스 인용 |제목=빅스타 산실 남편 쓰러진 후 ‘아내의 경영은’ |url=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9044487y |저자=김신 |뉴스=한국경제 |날짜=2014-09-04 |확인날짜=2018-07-23 }}</ref> 추진력과 스태프 관리에서 가요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호연 대표가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대성기획 및 DSP는 이수만 사장의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사실상 국내 양대 가요 기획사로 군림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카라, 시급해결과제 '멤버추가건' 아닌 '韓활동 확정+多' |url=http://star.mt.co.kr/view/stview.php?no=2014051408535756204 |저자=길혜성 |출판사=스타뉴스 |날짜=2014-05-14 |확인날짜=2018-07-23 }}</ref>
 
이처럼 성공시킨 가수들 숫자는 많으나, 그것이 시스템이 아닌 사장의 개인적인 감과 인맥에 의존했던 점은 한계였다. 이에 급작스런 뇌출혈로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자 큰 문제를 야기하였다.
 
2015년 10월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 표창을 받았으며, 표창은 카라 멤버 [[박규리]]와 [[한승연]]이 대리 수상하였다.<ref name="201510osen">{{뉴스 인용 |제목=DSP미디어 이호연 대표,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수상 |url=http://osen.mt.co.kr/article/G1110278859 |저자=강서정 |출판사=OSEN |날짜=2015-10-27 |확인날짜=2018-07-23 }}</ref> 국내 매니지먼트 1세대 출신으로서 대중들에게 오랜 시간 큰 사랑을 받은 음악가들을 기획하고 제작한 점, 카라 등을 통해 한류열풍을 이끄는데 앞장섰던 점, 그리고 TV드라마 “[[마이걸 (드라마)|마이걸]]”, “[[연개소문 (드라마)|연개소문]]”, “[[외과의사 봉달희]]” 등을 제작하여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미디어 사업 분야에도 기여한 점이 수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ref>{{뉴스 인용 |제목=DSP 이호연 대표,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수상. 카라의 박규리-한승연 대리 수상 |url=http://sports.chosun.com/news/utype.htm?id=201510280100318090021854&ServiceDate=20151027 |저자=이정혁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5-10-27 |확인날짜=2018-07-23 }}</ref>
 
[[2018년]] [[2월 14일]] 오랜 투병생활 끝에 별세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호연 DSP 대표 오늘 별세…젝키·핑클·카라 낳은 제작자 |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802150100124380008975&servicedate=20180214 |저자=박현택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8-02-14 |확인날짜=2018-07-23 }}</ref> [[오종혁]]이 상주를 자청했으며, 여러 연예인들과 관계자들이 조의를 표했다. [[옥주현]]은 장문의 글을 통해 이호연 사장과의 인연에 고마움을 표했다. 이외 [[소방차 (음악 그룹)|소방차]]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홍성규 가요평론가는, 이호연 사장의 심미안을 인정하면서 그가 건재했으면 DSP가 3대 대형 기획사에 속했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 비판 ==
아이돌 런칭 및 유지 관리에 대해서는 천부적 재능을 지녔으나 이를 맹신하여 지나치게 본인 위주의 기획 운영을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본인이 없으면 회사가 운영되는 게 불가능한 지경까지 가게 했다. 그래서 이호연이 직접 관리한 [[젝스키스]], [[핑클]], [[카라 (음악 그룹)|카라]], [[클릭비]] 등은 모두 성공했으나 이호연이 병상에 눕기 시작해서 관리하지 못한 [[레인보우 (대한민국의 음악 그룹)|레인보우]], [[에이젝스 (음악 그룹)|에이젝스]], [[에이프릴 (음악 그룹)|에이프릴]] 등은 모두 처참히 실패했다. 그리고 2018년 이호연이 사망한 이후의 [[DSP미디어]]는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수만]]은 [[강타]]를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로 임명하면서 [[강타]]에게 음반기획사를 경영하는 방법을 교육시켜서 [[이수만]] 부재시 [[강타]]가 [[이수만]]의 대리 임무를 수행하게 조치했다.
 
== 기타 ==
* 결혼을 매우 늦게 했다. 5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했고, 상대방인 최미경은 재혼이었다. 얼마 후 그가 뇌출혈로 쓰러졌고, 곧바로 그의 아내가 [[DSP 미디어]] 대표이사로 취임하였다. 이 과정에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이사로 등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ref name="hankyung.com"/>
* 슬하에 친자식은 없다. 다만 최미경이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강나현이 이호연의 의붓 딸이다.
* 전직 [[태권도]] 선수였다.
* 인격이 매우 훌륭해서 연예계에서의 명망이 매우 높았다.
* 전직 [[태권도]] 선수였으며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싸움 실력이 상당히 뛰어났다.
 
== 학력 및 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