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고현 남부 지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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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진 ==
일본 기상청에 따른 후쿠이효고현 남부 지진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 발생 시각: 1995년([[헤이세이]] 7년) 1월 17일 5시 46분 52초 ([[일본 표준시|J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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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원 깊이: 16 km
* 지진 규모: [[일본 기상청 규모]] M<sub>j</sub>7.3(처음에는 M<sub>j</sub>7.2였으나 2001년 4월 23일 일본 기상청의 규모 정의 수정으로 M<sub>j</sub>7.3으로 수정되었다.), 일본 기상청<ref name="Jma1995">ホーム > 各種データ・資料 > 地震月報(カタログ編) > [https://www.data.jma.go.jp/svd/eqev/data/mech/pdf/cmt1995.pdf 主な地震のCMT解 1995年] 気象庁</ref> 및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모멘트 규모 M<sub>w</sub>6.9
 
== 원인 ==
[[파일:Fire char kobe 2005.0117.jpg|섬네일|220x220px|매년 1월 17일 고베 시에서 열리는 시민 추도회|왼쪽]]
당시에는 미진이 있었으나 대지진이 올거라는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지진의 피해가 컸던 이유로는 지진의 진원지가 지표면으로부터 겨우 15&nbsp;km 아래에서 발생하여 지진 가속도가 생성이 되면서 격렬한 지각운동을 만들었다. (고베시는 갯벌매립도시이다. 즉 약한진동에도 매립되었던 갯벌이 흘러나와 도시가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도시 교외에 있는 많은 일본의 전통가옥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한다. 일본의 전통가옥은 지붕이 무거운 기와로 되어있는 반면, 가느다란 기둥과 벽은 석고나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지진에는 약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주택 구조는 일본의 자주있는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으나 지진에는 취약한 단점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했을때의 [[팬케이크 현상]]으로 일본의 전통가옥은 쉽게 무너졌다. 고베의 사망자 90%, 오사카의 사망자 40%는 이러한 일본의 전통 가옥에서 살았기에 피해가 컸다. 한신 고속도로의 상판이 무너지고 500m 이상이 쓰러졌다. 한신 고속도로의 기둥은 3중 철골로 보강이 되어 있었으나 가장 안쪽의 보강 철골이 짧아 지주의 약한 지점인 안쪽 철골이 끝나는 곳이 끊어지고 쓰러졌다. 그리고 고베의 생명줄인 항만이 파괴되어 복구하는데만 2년이 걸리고 40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 피해 ==
{{본문|한신·아와지 대진재}}
 
"[[한신지역]]"(阪神地域)이라고 불리는 [[니시노미야시]](西宮市), [[아시야시]](芦屋市), [[다카라즈카시]](宝塚市) 등 [[효고현]] 남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과 [[아와지 섬]]의 일부에서 최대 진도 7을 기록했고, [[오사카시|오사카]]에서 계측진도 6.4 (진도 6강)를 기록하였다. 인구 약 150만 명의 [[고베시]]에서 피해가 특히 컸다. 일본에서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6,434명이 사망, 3명 실종, 43,792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전파 104,906채 등 재산피해도 10조엔(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에 달했다. 한신 고속도로 일부와 [[산요 신칸센]], 특히 [[신오사카 역]]~[[히메지 역]] 구간이 무너져 WIN350(500계의 시제차) 시험이 [[하카타 역]]~[[히메지 역]] 구간만 이루어지고 붕괴된 구간은 임시 JR버스로 대체, 흙을 덮어 우회선로를 만드는 등 피해가 심각하였다. 이처럼 많은 교통 수단이 무너지면서 교통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오사카시|오사카]], [[요코하마 시|요코하마]], [[도쿄]]에서도 진동이 관측되었고, 오사카에서는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지진에 취약한 여러 일본식 집들이 붕괴되었으며 [[마이니치 방송]] 자야마치 사옥이 심하게 흔들리는 등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인한 한국 교포의 인명 피해도 5백여 명에 달했다.<ref>글로벌 세계대백과, ‘지진’ 항목</ref>
 
=== 각지의 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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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 [[나카교구]]
|}
 
== 원인 ==
[[파일:Fire char kobe 2005.0117.jpg|섬네일|220x220px|매년 1월 17일 고베 시에서 열리는 시민 추도회|왼쪽]]
당시에는 미진이 있었으나 대지진이 올거라는 예측을 할 수 없었다. 지진의 피해가 컸던 이유로는 지진의 진원지가 지표면으로부터 겨우 15&nbsp;km 아래에서 발생하여 지진 가속도가 생성이 되면서 격렬한 지각운동을 만들었다. (고베시는 갯벌매립도시이다. 즉 약한진동에도 매립되었던 갯벌이 흘러나와 도시가 그대로 주저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도시 교외에 있는 많은 일본의 전통가옥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한다. 일본의 전통가옥은 지붕이 무거운 기와로 되어있는 반면, 가느다란 기둥과 벽은 석고나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어서 지진에는 약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러한 일본의 주택 구조는 일본의 자주있는 [[태풍]]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계되어 있었으나 지진에는 취약한 단점이 있었다. 지진이 발생했을때의 [[팬케이크 현상]]으로 일본의 전통가옥은 쉽게 무너졌다. 고베의 사망자 90%, 오사카의 사망자 40%는 이러한 일본의 전통 가옥에서 살았기에 피해가 컸다. 한신 고속도로의 상판이 무너지고 500m 이상이 쓰러졌다. 한신 고속도로의 기둥은 3중 철골로 보강이 되어 있었으나 가장 안쪽의 보강 철골이 짧아 지주의 약한 지점인 안쪽 철골이 끝나는 곳이 끊어지고 쓰러졌다. 그리고 고베의 생명줄인 항만이 파괴되어 복구하는데만 2년이 걸리고 40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 피해 ==
{{본문|한신·아와지 대진재}}
 
"[[한신지역]]"(阪神地域)이라고 불리는 [[니시노미야시]](西宮市), [[아시야시]](芦屋市), [[다카라즈카시]](宝塚市) 등 [[효고현]] 남동부의 인구 밀집 지역과 [[아와지 섬]]의 일부에서 최대 진도 7을 기록했고, [[오사카시|오사카]]에서 계측진도 6.4 (진도 6강)를 기록하였다. 인구 약 150만 명의 [[고베시]]에서 피해가 특히 컸다. 일본에서는 [[1923년]] [[간토 대지진]] 이후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했다. 6,434명이 사망, 3명 실종, 43,792명이 부상당했으며, 주택 전파 104,906채 등 재산피해도 10조엔(당시 일본 GDP의 2.5%에 해당)에 달했다. 한신 고속도로 일부와 [[산요 신칸센]], 특히 [[신오사카 역]]~[[히메지 역]] 구간이 무너져 WIN350(500계의 시제차) 시험이 [[하카타 역]]~[[히메지 역]] 구간만 이루어지고 붕괴된 구간은 임시 JR버스로 대체, 흙을 덮어 우회선로를 만드는 등 피해가 심각하였다. 이처럼 많은 교통 수단이 무너지면서 교통이 마비되었다. 그리고 [[오사카시|오사카]], [[요코하마 시|요코하마]], [[도쿄]]에서도 진동이 관측되었고, 오사카에서는 놀란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고, 지진에 취약한 여러 일본식 집들이 붕괴되었으며 [[마이니치 방송]] 자야마치 사옥이 심하게 흔들리는 등 피해가 발생하였다. 이 지진으로 인한 한국 교포의 인명 피해도 5백여 명에 달했다.<ref>글로벌 세계대백과, ‘지진’ 항목</ref>
 
== 복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