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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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
{{본문|이탈리아의 통일}}
이탈리아는 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몇 천년 동안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쪼개져 있었는데, 결국 1800년대 들어서야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과 [[사보이아가|사보이사보이아 왕가]]가 힘을 합치며합쳐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이탈리아 왕국이 설립되게 된다설립되었다. 1815년의 빈 회의 이후, 이탈리아에서는 통일의 움직임이 사회적으로 급부상하였고 외국의 통치를 받는 지역들을 모두 독립시켜, 하나의 국가 아래에 통일시키자는 의견이 떠올르기 시작하였다. 이 때의 가장 대표적인 급진주의자가 바로 [[주세페 가리발디]]였는데, 그는 비밀 결사조직 [[카르보나리 당]]의 일원이자 1830년대에 떠오른 [[청년 이탈리아당]]의 창립자였다. 가리발디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한 공화정을 만들고 싶어하였으며, 이탈리아 통일 운동을 주도하였다.
 
주세페 가리발디는 청년 이탈리아당에 열성적인 지지자들이 매우 많았고, 이들은 이탈리아 남부에서 통일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리발디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 이 때 이탈리아 북부를 통치하던 [[사르데냐 왕국]]의 사보이사보이아 왕가와 사르네냐 왕국 정부를 이끌던 [[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백작|카밀로 벤소 디 카보우르]] 백작도 통일된통일 이탈리아 국가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1848년에 유럽을 휩쓸은 1848년 혁명의 열기를 이어 처음으로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에 1차 독립전쟁을 선포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1855년, 사르데냐 왕국은 [[크림 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편을 들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카보우르 백작의 통일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강대국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사르데냐 왕국은 1859년에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2차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결국 롬바르디아를 오스트리아에게서 해방시켰다.
 
1860년과 1861년 사이, 가리발디는 나폴리와 시칠리아 지방을 통일하였으며, 사보이사보이아 왕가는 로마와 교황령 일부를 제외한 이탈리아 중부를 완전히 점령하여 통일하였다. 1860년 10월 26일, [[테아노]]에서 사보이사보이아 왕가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가리발디가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고, 합의가 이루어져 마침내 에마누엘레 2세가 이탈리아 전체의 왕으로 등극하였다. 가리발디는 본디 공화정을 바랐던 자신의 꿈을 접고 사보이사보이아 왕가를 지지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이탈리아 왕국]]이 성립되었던성립될 것이다수 있었다. 카보우르 백작도 가리발디가 통일한 이탈리아 남부를 1861년 3월 17일에 샤르데냐 왕국에 편입시키는 것에 동의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1961년1861년 3월 17일에는17일에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의 건국이 선포되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왕국의 첫 국왕으로 즉위하였으며, 왕국의 수도를 피렌체로 옮겼다. 이 때 이탈리아 왕국의 수립에 기여한 4명의 인물들(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가리발디, 카보우르 백작, [[주세페 마치니|마치니]])를 건국의 아버지라 부른다.
[[파일:VICTOR EMMANUEL II.jpg|섬네일|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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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화정 ===
이탈리아는 [[1946년]] [[6월 2일]] 국민 투표를 통해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이 되었으며, [[1948년]] [[1월 1일]]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이 날을 공화국의 날로 제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아들인 [[움베르토 2세]]는 왕위에서 퇴위하도록 강요당했고, 사보이아 왕가는 이탈리아에서 쫒겨났다. 1947년에 이탈리아 평화 협정이 맺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베네치아줄리아가 다시 유고슬라비아에게 돌아갔으며 이탈리아가 해외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도 모두 빼앗기면서 이탈리아 식민 제국이 종말을 맞았다. 1950년에는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가 1960년 7월 1일까지 이탈리아의 행정력 아래에 [[유엔|국제 연합]]의 신탁통치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돌입한 냉전 시기에서, 특히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이탈리아가 선거를 통하여 다시 극단적인 파시스트나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잡는 것이 아닌가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두려움은 중도적인 성향의 [[기독교민주당]]의 [[알치데 데 가스페리]] 총리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소멸되었다. 1949년에 이탈리아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였으며, 이후 미국의 [[마셜 플랜]]의 도움을 지대하게 받아 1960년대 후반까지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보이며 '경제 기적'을 일구어냈다. 1957년에 이탈리아는 유럽 경제 공동체의 창립 회원국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것이 나중에 발전하여 1993년에 유럽 연합으로 성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