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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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reek-Persian duel.jpg|섬네일|right|220px|그리스의 호플리테스와 페르시아의 전사, 기원전 5세기 킬리크스]]
제2차 페르시아 침공은 유럽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많은 사학자들은 그리스가만약 정복당하지그리스가 않았다면정복당했다면 서구 문명에문명의 기초한기초인 고대 그리스 문화가 서구 문명발전하지 못했을 자체의것이며 확장만으로는 발전하지나아가 못했을서구 문명 자체가 그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이것이 과장되었을이것은 지라도지나친 주장일 수 있으나, 당시의최소한 그리스당사자인 당시의 사람들에게그리스인들조차도 무언가 중요한 것이 일어났다는 것만은것을 인지하고 확실하다있었다.<ref>홀랜드, pp xvi</ref>
 
군사적으로군사적인 면에서 의의를 살펴보면, 페르시아의 침공 동안 전술적, 전략적 혁신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고, 전쟁의 승리를 가져온 것은 장군이 아니라 병사들이었다고 시사하고 있다병사들이었다.<ref>Lazenby, pp. 257–258</ref> 테르모필라이는 종종 군사적 역량으로서 지형을 이용한 좋은 예로 사용된다제시된다.<ref>Eikenberry (1996)</ref> 그리고 살라미스 이전의 [[테미스토클레스]]의 책략은 전투에서 기만을 이용하는 좋은 예다예로 제시된다. 이 침공의두 가지는 장군에 의한 것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주요 교훈은 [[마라톤 전투의 사건에서도전투]]에서도 재확인할 수 있지만, 근접전에서의백병전에서 페르시아 경갑보병을 상대한 [[중장보병]]의 중요성이었다.<ref>홀랜드, p. 358–359</ref><ref>Lazenby, p. 256</ref> 이 교훈을 배웠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페르시아 제국은 군사들을그리스 모으기용병을 시작하였고, 그리스모집하고 용병에그들에 의존하기 시작했다.<ref>크세노폰, [http://www.perseus.tufts.edu/hopper/text?doc=Perseus%3Atext%3A1999.01.0202&redirect=true Anabasis]</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