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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
 
'''신명기'''(申命記, {{llang|he|דְּבָרִים|데바림}}, {{llang|el|Δευτερονόμιον|데우테로노미온}}, {{llang|en|Book of Deuteronomy}})는 [[타나크]]의 율법서 [[토라]]의 다섯 번째 부분이자 [[구약성경]]의 다섯 번째 책이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전, [[모세]]가 [[야훼]]의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죽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 [[출애굽기]], [[민수기]] 등에 등장했던 가르침이 반복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신명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보통 신명기를 모세5경중 하나로 보지만, 모세의 죽음에 대한 언급이 있기 때문에 신명기의 저자는 모세가 아닐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을 수 있으나, 신명기에 40여 회(1:16-18; 3:21; 29:5; 31:9, 24-25, 30), 신약에 80여 회에 걸쳐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밝히고 있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수 1:7), 신약의 예수(마 19:8)도 신명기를 모세의 책으로 인용하고 있어 모세의 저작으로 보는 것이 옳다. 34장의 모세 죽음에 대한 기록은 후대에 가필(加筆)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 신명기의 발생과 편찬 ==
신명기에 40여 회(1:16-18; 3:21; 29:5; 31:9, 24-25, 30), 신약에 80여 회에 걸쳐 신명기의 저자가 모세임을 밝히고 있고,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수 1:7), 신약의 예수(마 19:8)도 신명기를 모세의 책으로 인용하고 있으며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해석하나, 34장의 모세 죽음에 대한 기록은 후대에 가필(加筆)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신명기는 스스로 모세가 책의 저자임을 증언하고,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교계 바깥의 모든 역사학자들은 모세의 저작성을 거부하고, 훨씬 늦은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이 책이 저술되었다고 본다.{{sfn|Bos|2013|p=133}} 일반적으로 '신명기 법전'이 등장하는 12~26장이 가장 먼저 쓰여졌다고 보고, 그 다음 두 번째 프롤로그(5~11장), 마지막으로 첫 번째 프롤로그(1~4장)가 쓰여졌다는 것이 중론이다.{{sfn|Van Seters|2015|pp=79-82}} 신명기 법전이 [[바빌론 유수]]기, 혹은 [[예후드 메디나타|페르시아 지배기]]에 쓰여졌다는 주장도 나왔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시아]] 왕 말기, 즉 기원전 7세기 말경에 만들어졌다고 판단한다.{{sfn|Pakkala|2009|p=391}}<ref>Rofé, pp.4–5</ref>{{sfn|Davies|2013|p=101-103|ps=, "In short, the belief of most biblical scholars that a scroll depriving the monarch of all real powers (and in effect destroying the institution of monarchy) is a plausible product of seventh-century Judah is astonishing and can only be explained by assuming that such scholarship is taking the fact for granted and thus either ignoring the absurdity or fabricating an implausible rationalization for it... the fifth century BCE provides a plausible context..."}} 신명기를 편찬한 [[레위인]]들을 [[신명기사가]]라고 하는데, 이들의 경제적 궁핍함과 사회적 지위가 여기 반영되었다고 본다.{{sfn|Sommer|2015|p=18}}
 
신명기는 스스로 모세가 책의 저자임을 증언하고,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교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사실상 교계 바깥의 모든 역사학자들은 모세의 저작성을 거부하고, 훨씬 늦은 시기인 기원전 7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 이 책이 저술되었다고 본다.{{sfn|Bos|2013|p=133}} 일반적으로 '신명기 법전'이 등장하는 12~26장이 가장 먼저 쓰여졌다고 보고, 그 다음 두 번째 프롤로그(5~11장), 마지막으로 첫 번째 프롤로그(1~4장)가 쓰여졌다는 것이 중론이다.{{sfn|Van Seters|2015|pp=79-82}} 신명기 법전이 [[바빌론 유수]]기, 혹은 [[예후드 메디나타|페르시아 지배기]]에 쓰여졌다는 주장도 나왔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요시아]] 왕 말기, 즉 기원전 7세기 말경에 만들어졌다고 판단한다.{{sfn|Pakkala|2009|p=391}}<ref>Rofé, pp.4–5</ref>{{sfn|Davies|2013|p=101-103|ps=, "In short, the belief of most biblical scholars that a scroll depriving the monarch of all real powers (and in effect destroying the institution of monarchy) is a plausible product of seventh-century Judah is astonishing and can only be explained by assuming that such scholarship is taking the fact for granted and thus either ignoring the absurdity or fabricating an implausible rationalization for it... the fifth century BCE provides a plausible context..."}} 신명기를 편찬한 [[레위인]]들을 [[신명기사가]]라고 하는데, 이들의 경제적 궁핍함과 사회적 지위가 여기 반영되었다고 본다.{{sfn|Sommer|2015|p=18}}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신명기의 편찬 과정은 다음과 같다.{{sfn|Rogerson|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