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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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살 과정 ===
그를 살해한 사람에 대해서는 기록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살해범이 김상렬(金相列) 삼형제라는 것이다.<ref>대한민국 국가보훈처 민족정기선양센터, [http://narasarang.mpva.go.kr/person_search/merit_search_view.asp?idx=3964 독립유공자 공훈록 - 신돌석] {{웨이백|url=http://narasarang.mpva.go.kr/person_search/merit_search_view.asp?idx=3964 |date=20160305021919 }}</ref>
신돌석의 부하였으며 외사촌 또는 이종사촌들로 가까운 친척이었던 김상렬이 형제인 김상태(金相泰), 김상호(金相浩)와 함께 신돌석에게 걸려 있던 거액의 현상금을 노리고 그에게 독이 든 술을 먹인 뒤 도끼로 살해하였다는 설이다.
 
신돌석의 시체를 일본군에 바쳐 많은 상금을 타려는 속셈으로<ref name="yiyiyi306">이이화, 《역사인물 이야기》(역사비평사, 1989) 306페이지</ref> 이들은 독주를 만들어 신돌석 앞에 내놓았다. 그는 이 독이 든 술을 들이키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f name="yiyiyi306"/> 김상렬 형제는 도끼로 신돌석을 내리쳤다.
 
살해범의 이름이 김도윤, 김도룡(또는 김도용) 형제라는 설<ref>김희곤, 《신돌석 - 백년 만의 귀향》(푸른역사, 2004) 중 대구 헌병 분대장의 보고서 인용 부분 (228쪽)</ref>, 범인은 김자성이고 그가 신돌석의 고종 사촌이었다는 설<ref>대한민국 문화관광부 e뮤지엄, [http://www.korea-museum.go.kr/sch/full.cgi?v_db=3&v_doc_no=00074596&v_ltype=1&LF=N 전쟁기념관 신돌석 흉상 설명] {{웨이백|url=http://www.korea-museum.go.kr/sch/full.cgi?v_db=3&v_doc_no=00074596&v_ltype=1&LF=N |date=20070928054337 }}</ref> 도 있다.
 
한편, 국가보훈처의 포상자 공적조서에 따르면, 신돌석의 고종형제 김자성(金自聖)이 자기집으로 유인하여 삼형제가 도끼로 쳐죽였다고 하며 신돌석의 유해를 들어옮기고 일본 헌병대에 발고하였으나 생포하지 않고 살해 후 발고하였다는 까닭으로 일본 헌병대로부터 퇴짜를 맞고 현상금을 받는 데 실패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ref>[http://e-gonghun.mpva.go.kr/portal/web/merit/search_merit_view.jsp?manage_no=2946&judge_case_item_cd=196200_SSG00005_2946&keyword=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포상자 공적조서]{{깨진 링크|url=http://e-gonghun.mpva.go.kr/portal/web/merit/search_merit_view.jsp?manage_no=2946&judge_case_item_cd=196200_SSG00005_2946&keyword= }}</ref>
 
== 사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