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툴라 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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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보르지긴]] 씨족으로 [[카이두 (카묵 몽골)|카이두]]의 후손 [[카불 칸]]의 다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미상이다. 그의 둘째 형 [[바르탄|바르탄 바하투르]]는 [[예수게이]]의 아버지이자 [[칭기즈 칸]]의 할아버지로, 칭기즈칸은 그의 종손자가 된다. 쿠툴라 칸의 생일과 초기 행적은 기록이 상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대식가에 술을 좋아했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쿠툴라는 하루에 양을마리마리를 먹고, 암말의 우유로 만든 술을 엄청나게 마셨다 한다.<ref>佐口 透, 《モンゴル帝国史〈1〉》 (1968年, 東洋文庫), pp. 29</ref> 그는 용감한 인물로 묘사된다.
 
숙부 [[안바가이암바카이 칸]]이 [[타타르]]족의 모의로 납치, [[금나라]]에 의해 수레에 못박혀 처형되고, [[몽골 족]]은 오난 강 고루고나쿠 강변으로 이주하였다. [[암바가이암바카이 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몽골인들은 [[쿠릴타이]]를 열어 쿠툴라를 새로운 칸으로 선출했다. 쿠툴라는 [[타타르]]와 [[금나라]]의 연합에 대응하여 [[케레이트 족]]의 족장 [[토그릴 옹 칸]]과 동맹을 맺었다.
 
쿠툴라 칸은 [[안바카이 칸|암바카이 칸]]의 유언과, [[안바가이암바카이 칸]], 오킨 바락 형제의 납치에 대한 보복으로, 암바가이암바카이 칸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함께 [[타타르]] 족 토벌에 출전했다. 쿠툴라 칸과 카다안은 코톤 카라크와 자리크부카 등이 이끄는 타타르족과 13회에 걸쳐 교전하였으나 성과를 얻지 못했다. 13번째 [[타타르 족]]의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몽골족]]의 다른 부족인 [[도르벤 부족]]에게 매복 공격을 당해, 습지로 도주하여 진흙탕에 빠졌다가 겨우 탈출하기도 했다. 예수게이와 그의 친척들은 쿠툴라가 죽은 것으로죽었다고 간주되었다보았다.
 
습지에 빠져 말의 목까지 차오르자, 쿠툴라 칸은 안장 위에 서서 진흙탕에서뛰어올라 튀어진흙탕으로부터 탈출했다. 건너편에 있던 도르벤 부족 사람들은 "말을 잃은 몽골 인은몽골인은 무엇이 있겠는가"라며 추격을 포기했다. 도르벤 부족이 떠난 뒤 쿠툴라 칸은 발길을 돌려 자신의 말을 진흙탕에서 끌어냈으며, 도르벤 인도르벤인 영지를 공격하여 그들의 말들을 빼앗아 귀환했다. 쿠툴라 칸의 휘하에서 먼저 도망친 종자에 의해 쿠툴라 칸이 사망 한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예수 게이 바아토르예수게이 등에 의해 한때 장례식장례식이 준비되기도 했다.<ref>佐口 透, 《モンゴル帝国史〈1〉》 (1968年, 東洋文庫), pp. 29-30</ref> 쿠툴라가 귀환했을 때 그의 부족은 그의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1161년]] [[금나라]]는 [[타타르]]와 연합하여 [[카묵 몽골]]을 침략, 금-타타르 연합군은 몽골 족을 완전히 격파하고, [[카묵 몽골]]을 파괴하였다. [[예수게이]]가 그의 장례식을 준비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해 살해되었으나, 정확한 사망 일자는사망일자는 전하지 않는다.
 
=== 사후 ===
쿠툴라 칸의 사후 [[몽골]] 지역의 [[보르지긴]] 씨족은 분열, 키야토 가문과 타이치우트 가문으로 나뉘어 키야토 가문은 [[예수게이 비아토르]]가, 타이치우트 가문은 타르구타이 키리투도크(암바가이암바카이 칸의 손자)가 차지하였다.
 
쿠툴라 칸의 사후 [[몽골]] 지역의 [[보르지긴]] 씨족은 분열, 키야토 가문과 타이치우트 가문으로 나뉘어 키야토 가문은 [[예수게이 비아토르]]가, 타이치우트 가문은 타르구타이 키리투도크(암바가이 칸의 손자)가 차지하였다.
 
그에게는 주치([[칭기즈칸]]의 장남 [[주치]]와는 동명이인)와 알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알탄은 아버지의 뒤를 계승하라는 주변의 권고를 물리치고, [[칭기즈칸]]에게 귀부하였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