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오: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봇: 전거 통제 틀 추가 |
잔글 생몰년 분류 수정; 예쁘게 바꿈 |
||
6번째 줄:
[[신돈]]이 집권하였을 때 공민왕에게 신돈의 무례함을 논하는 내용의 상소를 작성해 원고를 소매에 넣고 성(省)에 가서 동료들에게 보이면서 "요물이 나라를 그르치니 제거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나 여러 낭관(郞官)들이 두렵고 위축되어 감히 응하는 자가 없었고, 이존오의 친척이었던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 [[정공권|정추]](鄭樞)만이 이존오의 권고에 따랐다고 한다.<ref name="정공권열전">《고려사》권제106 열전권제19 제신(諸臣) 정해 부(附) 정공권</ref>
《고려사》에 따르면 대언(代言) [[권중화]](權仲和)가 상소를 반도 채 읽기 전에 공민왕은 크게 노하여 상소를 태워버리라고 명하고 정추와 이존오를 불러 면전에서 꾸짖었다. 왕이 더욱 노하여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찬성사(贊成事) [[이춘부]](李春富), 밀직부사(密直副使) [[김란]](金蘭), 첨서밀직(簽書密直) [[이색]](李穡), 동지밀직(同知密直) [[김달상]](金達祥)에게 명령하여 그를 국문하게 하였다.<ref name="이존오열전"
그는 고향으로 낙향하여 [[공주군|공주]] 석탄(石灘)에서 은둔생활을 하다가 공민왕 20년([[1371년]])에 세상을 떠났다.<ref>《고려사》권제43 세가 권제43 공민왕 20년 5월 23일 갑술</ref> 향년 31세였다. 이존오는 병이 심해지자 측근에게 부축하여 자신을 일으켜 세우게 하고 "신돈이 아직도 강성한가?"라고 물어서 옆에 있던 사람이 그렇다고 말하자 다시 자리에 누우며 "신돈이 죽어야 내가 죽겠다"고 하여 신돈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존오가 죽고 3개월 뒤에 신돈은 수원에서 처형되었고, 공민왕은 이존오를 성균대사성(成均大司成)으로 추증하고 또한 이존오의 당시 열 살 된 아들 이래(李來, 어렸을 때의 자는 안국安國)에게 왕이 손수 "간신(諫臣) 이존오의 아들 이안국"이라고 써서 정방(政房)에 내리고 장거직장(掌車直長)에 임명하였다.<ref name="이존오열전"
== 이존오의 상소 ==
37번째 줄:
{{전거 통제}}
[[분류:1341년 태어남]]▼
[[분류:
[[분류:고려의 문신]]
[[분류:고려의 유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