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S. 패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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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여름 조지 패튼은 대담한 발상과 거침없는 전진 그리고 통상적인 군대의 규칙을 무시한 작전을 벌여 휘하의 제3군을 이끌고 북부 프랑스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함으로써 군대에 몸담은 이래 최고의 순간을 맞이했다. [[8월 1일]]부터 작전에 들어간 패튼의 기갑부대는 그달 말에 마옌·라발·르망·랭스·샬롱을 함락시키고, 12월에는 대규모로 벌어진 벌지 전투에서 바스토뉴를 방어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5년]] 1월말 패튼의 부대는 독일 국경선에 이르렀고 3월 1일 트리어를 점령했다. 그 뒤 10여 일 동안 모젤 강 북쪽 지역을 완전히 연합군의 수중에 넣고 수천 명의 독일군을 포로로 잡았다. 또한 패튼의 군대는 제7군과 합류해 독일군 10만 명을 포로로 잡으며 자르와 팔츠 지방을 점령했다.
 
이러한 군사적인 성공으로 인해 군당국은 민간인들이 패튼의 행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제기했음에도 이를 무마하고 넘겨버렸다. 예를 들어 조이조지 패튼은 1943년 8월 전투신경증에 걸려 병원으로 후송되어가던 병사를 때린 일이 있었다. 뒤에 패튼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이 일은 널리 보도되었다. 전후 패튼은 연합국들이 독일에서 벌인 탈나치화 정책에 공공연히 반대하다가 [[1945년]] 10월 제3군 사령관직에서 해임되었다.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