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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건은 감성적으로 눈물을 잘 흘렸는데, 후일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한 북조선 사람은 최용건을 가리켜 "[[공산당]]답게 표독스럽지 못하고 무골호인의 기풍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남파 간첩으로 왔던 [[이수근]]은 최용건을 경멸하여 "글자도 모르는 무식한 사람"이라고 지적했다.<ref>"내가 본 平壌 (2) 佛「다쿠르」記者의 現地 르포", 경향신문 1969년 2월 26일자 3면, 정치면</ref>
 
[[김일성]]이 아닌 최용건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을 담당한 이유는 두 사람의 인망 때문이었는데 최용건은 진짜 독립운동가인 반면 김일성은 고작 마적단이라는, [[말 (동물)|말]]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강도질을 하는 강도단의 두목에 불과한 인물이었다. 특히 김일성 측에서 독립운동이라고 내세우는 [[보천보 전투]]는 말이 전투지 실상은 170명의200여 명의 병력으로 고작 5명과 맞서서 2살 배기 아기와 요리사, 이렇게 단 2명만 사살한, 전투라고 칭하기조차 민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10월 유신]]이 선포된 이후 얼마 못 가 김일성이 [[사회주의 헌법]]을 선포하면서 김일성은 최용건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에서 보직해임 시키고 본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의 자리에 취임했다.
 
== 가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