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흥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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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궁 건물 구성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는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된 정당이 있었으며, 정당 앞쪽에는 임금님이 친행할 때 [[배례]]공간인 [[배각]]이 있었고, 배각 좌우로 [[전사청]] 및 [[이안청]]이 있었다. 현재는 도시 개발및 도정궁 화마로 소실되어 사진으로마 볼수 있으며, 불천지위 6위를 1950년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339번지 덕릉마을 내 [[덕릉재실]](德陵齋室, 水落山房)로 이전하여 영년봉묘하고, 각 기신일에 후손들이 제향을 받들고 있다.
 
덕흥궁 제향의를 보면 왕릉 제향하고, 흡사하며, 현재 [[칠궁]] 제향하고 비슷하다. 덕흥궁 제향 의례는 [[덕흥대원군궁급묘의국조속오례의]], [[대한예전춘관통고]], [[국조속오례의의주속등록]], [[춘관통고대한예전]], [[의주속등록덕흥대원군궁급묘의]] 등 예서에 잘 나와 있다.
 
덕릉재실은 원래가 수락산방(水落山房)이라고해서 대한제국 제2대 황제 순종효황제의 어필 편액이 있었다. 현재는 수락산방보다는 덕릉재실로 더 많이 불리우며, 덕릉재실을 [[덕흥사]](德興祠)라고도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