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 해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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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침에 앞서 가장 큰 걸림돌인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 왜는 사전에 공작을 펼쳤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첩자인 요시라를 경상우병사 [[김응서]]에게 보내어 “음력 1월 21일에 가토가 조선에 도착할 터인즉, 해상에 매복해서 급습하면 생포할 수 있다.”라는 허위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 조선 조정은 이에 이순신에게 왜적을 기다렸다가 공격하라고 지시하였으나, 적의 계략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조정은 이순신을 파면하고 대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앉혔다.
 
원균도 상황의 위험함을 깨닫고 출전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권율은 단지 원균이 미워서 원균과 그 아들 원사웅에게 곤장을 때려가며 협박을 가하여 기어이 어거지로 출전시키고야 만다. 모두가 반대한 칠천량 해전을 권율 혼자, 아무 근거도 없이 단지 원균이 미워서 강행한 결과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 이후 처음으로 대참패를 하게 된다.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였던 때에는 출전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던 원균이지만, 막상 그 자리에 오르고 나자 원균도 상황의 위험함을 깨닫고 출전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1597년]] [[음력 7월 11일]] 도원수 [[권율]]이 원균에게 태형을 가해 원균을 억지로 출전시켰다.<ref> {{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