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전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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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종 12년에서 15년까지 자하문 밖에 있던 [[총융청]]을 [[총위영]]으로 고쳐 부른 적이 있다. 이 지도에는 [[총신영]]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1915년]]에 측도한 2만 5천분의 1 [[북한산]] 도폭에는 총융청이 위치하고 있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신영리라고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총위영을 총신영으로 불렀던 것이 확실하므로 이 지도는‘[[총신영]]'으로 부르던 헌종 12년에서 15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헌종 12년(1846)에서 15년(1849)까지 자하문(紫霞門) 밖에 있던 총융청(摠戎廳)을 총위영(摠衛營)으로 고쳐 부른 적이 있다. 이 지도에는 총신영(摠新營)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1915년에 측도(測圖)한 2만 5천분의 1 북한산 도폭에는 총융청이 위치하고 있던 세검정초등학교 자리에 신영리(新營里)라고 표시하고 있다. 따라서 총위영을 총신영으로 불렀던 것이 확실하므로 이 지도는‘총신영'으로 부르던 헌종 12년에서 15년 사이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목판은 세로 82.5cm, 가로 67.5cm이며 실측에 의해 정밀하게 그렸다. 산지와 수목표시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와 ≪청구도≫를 결합시킨 느낌을 준다. 특히 경복궁과 경덕궁, 그리고 백악을 비롯한 사산(四山)의 수목 표현은 ≪청구도≫와 매우 흡사한 느낌을 준다. 따라서 먹판에 그린 지도이지만, 판화로서의 가치도 동시에 지니는 수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도의 축척은 성안에서는 균일하나 성 밖은 소축척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지도의 표현방법은 영조와 정조 때 제작된 도성도의 방법을 답습한 것으로 좁은 지면에 넓은 주변을 간략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지도의 목판은 현재 고려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이를 인쇄한 여러벌의 지도가 전해져 널리 보급되었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목판인데도 도성도 유형의 필사본 지도에서 제공하고 있는 서울에 관한 많은 양의 정보를 대부분 수록하고 있어 목판본 서울 지도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민국문화재}}
{{서울시공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