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촉: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역사: 앞말에 받침이 없을 때는 '을' 대신에 '를'을 붙입니다. |
잔글 →역사: 군대를 |
||
8번째 줄:
그후 후당에서는 장종이 살해당하고 명종(明宗;[[이사원]])이 옹립되었다. 명종은 촉에 있던 맹지상에 대해 경계심을 품고 그를 억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반발한 맹지상은 [[930년]] 거병하여 후당군을 촉에서 몰아내고, [[932년]]까지 촉의 전역을 장악했다. 이쯤되자 명종도 맹지상을 완전히 지배하에 두는것이 어렵다는것을 알고 회유책으로 전환하여 [[933년]] 맹지상을 촉왕에 봉하였다. 다음해 명종이 죽자 맹지상도 완전히 자립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나 같은해 사망했다.
그후 맹지상의 3남 [[맹창]](孟昶)이 제위를 이었다. 천연의 요해에 있던 촉은 외부의 적을 걱정하지 않아서 좋았고,
또한 오대(五代)가 [[후진 (오대)|후진]]에서 [[후한 (오대)|후한]]으로 대체되는 혼란을 틈타 진(秦),계(階), 성(成), 봉(鳳)의 4주(현재의 [[감숙성]] 천수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빼앗았다. 그러나 후한에서 [[후주 (오대)|후주]]로 교체되고, 명군 세종(世宗;[[시영]])이 등장하자 [[955년]] 사천을 빼앗겨 버렸다. [[960년]] [[송나라]]가 건국되자 맹창은 북쪽의 [[북한 (십국)|북한]]과 손을 잡고 송나라에 대항했으나, 저항은 수포로 돌아가 [[965년]] 송나라에 병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