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선화당 측우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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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측우대]]는 [[화강암]] 기둥으로 가운데 직경 16cm, 길이 4.3cm의 구멍이 있고, 앞면 한 가운데에는 [[측우대]], 뒷면에는 [[건륭경인오월조]]라 새겨져 있다. 이를 통하여 [[조선 영조 46년]]에 제작된 측우대임을 알 수 있다. [[1917년]] 조사 때 대구 감영 선화당 뜰에 측우기와 함께 있었던 것을 인천 관측소로 옮겼다. 이후 측우기는 없어지고 대석만 남아 있다가 [[1950년]] 국립기상대로 옮겼다.
이 유물은 한국전쟁 때 총격으로 몇 군데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지만 제작연대가 확실한 측우기로는 유일하다. 특히 영조실록의 기록과 부합되는 것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소재지==
 
'''대구선화당측우대 大邱宣化堂測雨臺'''
▒ 지정번호 : 보물 제842호
 
▒ 지정연월일 : 1985년 8월 9일
▒ 시 대 : 조선 영조 46년(1770)
▒ 규모ㆍ양식: 가로ㆍ세로 37cm, 높이 46cm
▒ 재 료 : 화강암
▒ 소 유 자 : 국유
▒ 소 재 지 :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460-18 기상청
 
{{서울시공개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