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 (불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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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화합[三和]이란 감각기관[所依根]{{.cw}}식[能緣識]{{.cw}}인식대상[所緣境]의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을 말하며, 여기서 촉(觸, sparśa)심소가 생기한다. 따라서 여기서 촉은 결과[果]이고, 세 가지의 화합은 원인[因]이다. 세 가지가 화합하는 곳에서 촉이 생겨난다고 하는 삼화생촉설(三和生觸說)은 설일체유부에서도 주장된다. 경량부는 삼화성촉설(三和成觸說)을 주장하여, 세 가지가 화합하는 곳이 바로 촉이며 별도로 새롭게 촉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위의 《[[성유식론]]》의 인용문에서 '''달라지는 것'''[變異]은 [[오근과 육근|감관]][根]과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境]과 [[마음 (불교)|마음]][識: 8식, 즉 심왕, 즉 심법] 화합하기 이전에는 이들 3가지는 아무런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이들 3가지가 화합함으로써 비로소 각자의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즉, 이들 3가지는 화합 이후의 양상이 화합 이전의 양상과는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위의 인용문의 정의에서 '변이(變異)', 즉 '달라진다'고 말한 것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19 119 / 583]. 변이(變異)|ps=<br />"여기서 변이(變異)의 뜻은 다음과 같다. 감각기관[根]{{.cw}}대상[境]{{.cw}}식[識]이 각각 별도로 있어서는 어떤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며, 셋이 화합하여[三和] 비로소 각자의 작용을 현현할 수 있다. 이 세 가지가 화합될 때는 뛰어난 작용을 일으켜서 이전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여기서 그것을 변이(變異)라고 말한다."}}
 
위의 《[[성유식론]]》의 인용문에서 '''분별하는 것'''[分別] 즉 '''3분별'''(三分別) 또는 '''3사분별'''(三事分別)은 [[인식]]{{.cw}}[[식별]]{{.cw}}[[요별]]과 같은 [[앎]]의 의미가 아니라 '비슷한 작용을 한{{nowrap|다'}}는 상사(相似)의 뜻이다. 즉, [[오근과 육근|감관]][根]과 [[불교 용어 목록/이#인식대상|대상]][境]과 [[마음 (불교)|마음]][識: 8식, 즉 심왕, 즉 심법]의 화합에 의해 촉(觸)이 생겨나고 그렇게 되면 이들 3가지의 양상이 화합 이전과는 크게 달라져 각자의 작용을 나타내게 되는데, 이러한 전체적인 작용과 유사[相似]한 작용이 다시 일어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비슷한 작용은 2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생겨난 촉(觸)이 다시 이들 3가지의 화합을 강화시켜서 확실한 접촉이 형성되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촉(觸)이 원인이 되고 확실한 화합 또는 강화된 화합이 결과가 된다. 두 번째는 화합으로부터 촉(觸)이 생겨난 것과 유사하게 촉(觸)으로부터 [[변행심소]]에 속한 다른 [[마음작용]]인 [[수 (불교)|수]](受){{.cw}}[[불교 용어 목록/삽#상|상]](想){{.cw}}[[불교 용어 목록/ㅅ#사|사]](思)가 일어난다는 것이다.{{sfn|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K.614, T.1585|loc=제3권. p. [http://ebti.dongguk.ac.kr/h_tripitaka/page/PageView.asp?bookNum=897&startNum=119 119 / 583]. 분별(分別)|ps=<br />"여기서 분별(分別)은 상사(相似)의 의미로서, 일반적인 사유분별에서의 분별이 아니다. 본문에서 변이(變異)한 데서 분별한다는 뜻은 다음과 같다. 즉 세 가지(根{{.cw}}境{{.cw}}識)가 화합하여 촉이 생겨나고, 이때의 셋은 화합 이전과 크게 다르다[變異]. 생겨난 촉은 다시 셋의 화합을 강화시켜서 모두 대상에 접촉하게 한다. 이때는 촉이 원인이고 셋의 화합은 결과가 된다. 본문에서 분별, 즉 상사(相似)란 첫째, 세 가지의 화합된 상태와 비슷하게 되는 것이고, 둘째, 세 가지의 화합으로써 촉을 생겨나게 한 것과 비슷하게 수(受) 등을 일으키는 의지처[所依]가 되는 작용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 '촉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은 촉(觸) 다음에 [[수 (불교)|수]](受){{.cw}}[[불교 용어 목록/삽#상|상]](想){{.cw}}[[불교 용어 목록/ㅅ#사|사]](思)가 순서대로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라 촉(觸)이 성립됨과 동시에 [[수 (불교)|수]](受){{.cw}}[[불교 용어 목록/삽#상|상]](想){{.cw}}[[불교 용어 목록/ㅅ#사|사]](思)가 일어난다는 것으로, 이러한 '''동시발생설'''(同時發生說)은 [[설일체유부]]와 동일한 견해이며, '''계기발생설'''(繼起發生說)을 주장한 [[경량부]]의 견해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