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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정의 실권을 잡고 있던 [[쩐투도]]에 의해서 아버지 리에우가 실각당하고 조정과 대립하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용이 뛰어난 인물로 후에는 장군으로 중용되었다.
 
[[1257년]] [[운남성]]에서 인근의 민족들을 토벌하던 몽골의 장군 우리양카다이우량카다이(Uriyangkhadai, 兀良合台ᠤᠷᠢᠶᠠᠩᠬᠠᠳᠠᠢ)가 [[송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베트남에 길을 빌려달라며 사신을 보내자, 태종은 사신을 옥에 가두었다. 쩐은 이 때 변경 방비의 임무를 맡게 된 것도 이 때 였다.
 
이에 우리양카다이는우량카다이는 군사를 이끌고 홍강(紅江)과 로강(Lo 江)을 따라 현 [[하노이]]인 탕롱(昇龍)성에 입성하였으나, 식량 부족과 기후 문제로 군사들의 사기가 위축되고 베트남을 정복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곧 철수를 시작했다. 이에 베트남 측도 이듬해 12월 동더우보(東頭步)에서 반격을 시작했지만 전쟁을 수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몽골에 사절을 보내 화약을 맺고, 3년에 한 번 입공(入貢)할 것을 약속했다.
 
[[1283년]]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이 군대를 보내 [[참파]]를 침공하여 당시 참파의 수도인 비자야를 함락시키고 베트남에게 참파 정벌에 동원시킬 병사를 요구하였다. 베트남 측은 이 요구를 거절했고, 이에 쿠빌라이 칸은 해로를 통해 베트남 침공을 시도했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 큰 손실을 입고 퇴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