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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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아는 [[기원전 546년]] [[페르시아 제국]]의 통제 아래로 왔다. 그때 [[메디아]]의 하르파구스는 [[키루스 대왕]]의 장군으로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정복하였다. 하르파구스의 후손이 [[기원전 468년]]까지 다스렸는데 그때 아테네가 그들을 무너뜨렸다. 그후 페르시아는 기원전 387년 다시 점령하였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유지하였다. 그것은 곧 [[셀레우코스 제국]]의 손에 넘어가고 [[기원전 189년]]에는 [[공화정 로마|로마 공화국]]에 떨어졌다. [[아우구스투스]]의 상속자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서기 [[4년]]에 그곳에서 피살되었다. [[43년|서기 43년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리키아를 로마제국의 속주로 병합하며 그것을 팜필리아와 통합하였다. 리키아는 결국 그리스 [[비잔티움 제국]]의 일부가 되었으나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되어 [[터키]]의 일부가 되었다.
리키아는 트리밀리라는 이름을 지니는데 그것은 파타라 발굴에서 고대 도로 표지판에
2세기의 대화록 에로테스는 리키아가 그들의 기념비보다는 그들의 이전 영광을 포함하므로 역사가 흥미롭다고 하였지만 리키아의 유적에서 많은 유물들이 특히 그들 특유의 절벽 측면의 바위를 깍아만든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리키아는 여신 [[레토]]와 그녀의 쌍둥이 아이 [[아폴론|아폴로]]와 [[아르테미스]]의 숭배의
==리키아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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