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뷰퍼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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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뷰퍼드는 유타의 임지에서 동부로 돌아왔다. 1861년 11월, 소령 계급으로 부시찰관으로 임명되었고, 1862년 7월, [[워싱턴 D.C.]] 방어 임무에 몇 달간 종사한 뒤, 지원병 부대의 [[준장]]으로 승진했다. 1862년, 그는 [[존 포프 (군인)|존 포프]] 장군 휘하로 북군 [[버지니아군]] 의 2군단 기병여단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2군단 기병여단장으로 뷰퍼드는 [[2차 불런 전투]]에 참가했다. 뷰퍼드는 전투 후반에 돌격을 감행했으나 유탄에 무릎 부상을 당했다. 상처는 아팠지만 심각하지 않았지만, 남부의 신문들은 그가 죽었다고 보도했다.
 
그는 상처를 치료한 뒤 [[조지 B. 맥클렐란]]과 [[앰브로스 E. 번사이드]] 밑에서 기병참모가 되었다. 불행히도 이 지위는 참모 이상의 아무 것도아무것도 아니었으며, 뷰퍼드는 야전 전투부대를 지휘하고 싶어 했다. 맥클렐란의 [[메릴랜드 전역]]때, 그는 다시 [[포토맥군]]에서 기병참모로 복무했으며, [[사우스 산맥 전투|사우스 산맥]]과 [[앤티텀 전투|앤티텀]]에서 맥클렐란의 참모진에서 [[조지 스톤맨]] 준장을 대신하여 참가했다. [[조지프 후커]] 소장 휘하에서 뷰퍼드는 [[포토맥군]] 1 기병사단의 정규군 예비 기병여단을 맡게 되었다.
 
[[챈슬러즈빌 전투]] 후, [[알프드 플레손튼]] 소장이 기병 군단을 맡게 되었고, 뷰퍼드는 그 휘하에서 기병사단을 맡게 되었다. [[게티즈버그 전역]]에서 1기병사단을 지휘하게 된 뷰퍼드가 [[게티즈버그]]를 주전장으로 선택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뷰퍼드 사단은 제일 먼저 게티즈버그에 도착했고, [[헨리 히스]]의 [[남군]] 사단을 성공적으로 붙들어 맸으며, [[존 F. 레이놀즈]] 장군의 [[북군 1 군단]]이 마을 서쪽 고지를 장악할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그 후에 뷰퍼드의 지친 병력은 플레손튼이 [[메릴랜드 주]] [[에미츠버그 (메릴랜드 주)|에미츠버그]]로 보내어 보급 및 재보충을 받게 했다. 이후 게티즈버그 전투 중에 더 이상 전투참가는 없었지만, 뷰퍼드는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핵심적인 역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