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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 ==
[[파일:Wenjin Imperial Library.JPG|섬네일|오른쪽|250px|문진각]]
피서산장의 건축은 중국 강남지방의 훌륭한 정원과 명승을 참고해 지어졌다고 한다. 특히 [[쑤저우]]의 [[사자림]]과 [[한산사 (쑤저우)|한산사]], [[항저우]]의 무릉사와 [[육화탑]], 진강의 금산정, 가흥의 연우루 등의 명소들을 모방하였다고 전해진다. 내몽골과 대흥안령 등으로부터 소나무를 가져와 건축물에 이용했다고 한다. 또 원내에는 [[사고전서]]가 소장되어 있다. 피서산장과 주변 사원의 경치는 자연환경과 건축물의 조화를 보여 주는 훌륭한 사례로, 현대에 까지도 경관 설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피서산장은 청나라 황제가 머물던 정원 형태의 궁전이며, 사회·정치·역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 더욱이 이곳은 중국 봉건사회의 마지막 전성기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피서산장은 궁전 구역과 자연경관 구역(호수, 평원, 산악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00,200㎡200m<sup>2</sup>에 달하는 궁전 구역은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청 황제가 그 궁전에 기거하면서 행정 사무 및 의식을 치르는 장소였다.
 
이 구역은 정궁(正宮), 송학재(松鶴齋)·만예송풍(萬叡松風)·동궁(東宮)을 포함한 네 그룹의 건물들로 구성되는데, 건물들은 중국 전통의 간결한 양식으로 지어졌지만 황제의 근엄함도 갖추고 있다. 남동쪽에 위치한 496,000㎡000m<sup>2</sup>의 호수 구역은 중국의 신화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중국 정원 양식에 맞게끔 설계되었다. 이 구역에는 장강 남부 지역과 비슷한 경치를 만들어내는 8개의 호수와 여러 건물이 있다.
 
북쪽으로 펼쳐진 평원 구역은 607,000㎡000m<sup>2</sup> 규모이며, 서쪽의 초원과 동쪽의 산림 구역으로 나뉜다. 그중 초원 구역에서는 말의 경주가 열렸고, 나머지는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정치적 접대소 역할을 했다. 이곳의 이름은 ‘만 그루의 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의 만수원(萬樹園)이다. 이 산림의 서쪽 구역에는 황제의 가장 큰 장서각 중 하나인 문진각(文津閣)이 있고, 또 다른 여러 건물들은 풍경 사이사이에 들어서 있다.
 
북서쪽에 위치한 산악 구역에는 400,000㎡000m<sup>2</sup>가 넘는 광대한 부지와 4개의 큰 협곡(정자, 송림, 예서, 송운)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역에 세워졌던 전당과 정자, 사원, 수도원 가운데 지금은 40여 채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피서산장 주변의 사원은 몽골인과 티베트인 등 소수민족에 대한 유화 정책과 국경지역 통치를 강화하려는 방안으로 세워졌다. 12개의 라마교 사원들은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그 가운데 보녕사(普寧寺), 보우사(普佑寺), 안원묘(安遠廟), 보락사(普樂寺)는 건축학적으로 한족 양식과 티베트 양식의 조합이라는 특징이 나타나는데, 사원의 앞면은 한족 양식이지만 뒷면은 티베트 양식으로 되어 있다. 보락사의 상락왕불(上樂王佛)과 보녕사의 관음상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의 기교와 예술성은 특히 유명하다.
== 한국 문학 속의 피서산장 ==
이곳은 현재의 승덕(承德 청더, 옛 지명 열하熱河)의 열하행궁(熱河行宮)이라고도 칭하는데, 1780년 [[조선 정조]] 4년 사행단의 총지휘자 삼종형(三從兄 팔촌형) 박명원의 수행 비서역에 해당하는 군관자제 신분으로 따라가면서 적은 [[박지원 (실학자)|연암 박지원]]의 전 26권의 [[열하일기]]는 조선을 출발하여 이곳에 도착하여 [[건륭제]]를 만나는 과정을 적은 기행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