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쇼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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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야 성 전투가 한창일 때, 시마즈 군의 한 장수가 성 쪽으로 다가가 잠시 휴전을 청하고 「왜 불법을 가볍게 여기고 크리스트 교에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무도한 오토모 가문을 위해 진력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의 무공은 충분히 증명되었습니다. 항복하십시오.」라고 외쳤을 때, 「주군의 가문이 융성할 때는 충성을 바치며 공명을 다투는 자가 많지만, 쇠약해졌을 때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는 드물다. 당신 자신도 시마즈 가문이 쇠퇴했을 때 주군을 버리고 목숨을 아낄 것인가. 무가에 때어난 자로서 은혜와 인의를 잊는 자는 금수보다 못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여, 적 시마즈 군에서도 탄성이 터져나왔다고 한다.
* 이와야 성 전투에서 승산이 없는 것과는 관계 없이, 여전히 쇼운의 군재는 탁월하여 그 활약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농성군 763인은 2만의 시마즈 군에 대항하여, 철포, 돌, 화살 등을 시마즈 군에게 맹렬하게 퍼부어대고, 때를 맞춰 문을 열고 돌격해 나가는 유격 전술을 구사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격렬한 농성전이 보름 가량 계속되자 다카하시 군도 피로가 누적되어 부상을 입지 않은 자가 단 한 사람도 없는 상황에 빠졌다. 시마즈 군도 항복 권고를 포기하고 최후의 총공격으로 전환하였다. 시마즈 군과의 병력 차이를 만회하기 힘들고 더욱이 급수마저 끊기게 되어, 쇼운 이하 전원이 옥쇄하게 된다. 그러나 시마즈 군에게도 전투로 인한 사상자가 3,000명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이 때문에 시마즈 군은 군비를 재건하는데 시간을 들이게 되어, 도요토미 군의 규슈 상륙을 허용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쇼운의 목숨을 건 철저 항전은 시마즈 군의 규슈 제패의 꿈을 분쇄하는 데 멋지게 성공한 셈이다.
* 이와야 성 함락 뒤, 한냐자카(般若坂, 지명)의 에서의에서 쇼운 이하의 수급을 확인하는 의식을 치렀다. 공격군의 총대장 [[시마즈 다다나가]](島津忠長)는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정좌하고, 「우리는 보기 드문 명장을 죽이고 만 것이다. 쇼운 님은 군신의 화신이었다. 그 전공과 무훈은 오늘날 일본에서 견줄 자가 없을 것이다. 그의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면 최고의 친구가 되었을 터인데…」라고 장수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정중히 두 손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 이와야 성 아래에 돌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시마즈 군에게 매수당하여 성 안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를 알려준 노파가 낙성 뒤에 쇼운을 기리는 영민들에게 비난받아 산채로 매장당했다고 전해진다.
* 이와야 성을 둘러싼 격전은 전장을 시뻘겋게 물들였으며, [[다자이후]](太宰府)로 흐르는 소메가와(染川) 역시 선혈로 물들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