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치미카도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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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기간 동안, [[교토 시|교토]]의 [[조정 (정치)|조정]]에서는 외할아버지인 [[미나모토노 미치치카]]가 조정(만도코로; {{lang|ja|政所}})의 장관인 [[벳토]]({{lang|ja|別當}})의 관직을 맡아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고, [[가마쿠라 막부|가마쿠라]]에서는 1199년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lang|ja|源賴朝}})가 죽은 후 사실상 [[호조 도키마사]]({{lang|ja|北条時政}})를 위시한 호조 가문에 의한 [[고케닌]]({{lang|ja|御家人}}) 정치가 행해지고 있었다.
퇴위 후인 1221년 고토바 상황에 의한 가마쿠라 토벌 시도가 실패하여 막부의 반격을 받은 [[조큐의 난]]({{lang|ja|承久の亂}})이 발생하여 고토바 상황은 [[오키 군|오키({{lang|ja|隱岐}}) 섬]], 준토쿠 상황은 [[사도가 섬|사도({{lang|ja|佐渡}}) 섬]]에 유배되는 사건이 발행했다. 쓰치미카도 상황은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 대상은 되지 않았지만 아버지인 고토바 상황이 유배되었는데 아들인 자신이 교토에 남아있는 것을
1231년 10월 숨을 거두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죽기 직전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화장되어 가네가하라({{lang|ja|金ヶ原}})에 묻혔다. 현재 [[교토 부]] [[나가오카쿄 시|나가오카쿄({{lang|ja|長岡京}}) 시]]에 있는 가네가하라노 미사사기({{lang|ja|金原陵}})가 그곳이며, [[도쿠시마 현|도쿠시마({{lang|ja|德島}}) 현]] [[나루토 시|나루토({{lang|ja|鳴門}}) 시]]에는 유해를 화장한 곳에 조성한 화장총({{lang|ja|火葬塚}})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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