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1877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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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는 금융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여러 기업의 중역으로 일하면서 [[조선상업은행]] 감사를 지냈으며, 조선 금융계의 중심 인물로서 [[한상룡]]과 쌍벽을 이룬다는 평을 들었다. 경성상공회의소 부회두, 경기도평의회 의원, [[조선식산은행]] 상담역 등으로도 활동했고, [[한일은행]]이 호서은행을 합병하는데 공헌하여 한일은행의 토대를 닦았다.
 
[[1933년]]에 퇴직한 뒤에도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ref> {{뉴스 인용
|저자=성강현
|제목=‘조선공로자명감’친일 조선인 3백53명 기록 - 현역 국회의원 2002년 발표한 친일명단 일치 상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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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2004-03-18
|확인일자=2008-07-06
}} </ref><ref> {{뉴스 인용
|저자=성강현
|제목=3백53명 중 2백56명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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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자=2004-03-18
|확인일자=2008-07-06
}} </ref> 이 책자에는 김한규가 조선의 부호치고 특이한 인물이라 유흥에 별 관심이 없고 사회 활동을 즐겨, 이상적인 인격으로 청년의 모범이 된다는 평이 실려 있다.
 
실업인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대정실업친목회]] 등 각종 친일 단체에 가담<ref> {{서적 인용
|저자=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제목=일제협력단체사전 - 국내 중앙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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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208쪽
|꺾쇠표=예
}} </ref>하였고, 조선국방협회 부회장도 맡았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중추원 참의로 발탁되었으며,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수여받는 등 종7위 훈5등에 서위되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중 중추원과 친일단체 부문, [[2008년]] 공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서는 중추원과 경제 부문에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