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즈버그 전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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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역을 마친 뒤 ==
게티즈버그 전역은 리가 마지막으로 추진한 대규모 공세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북버지니아군의 전투 작전은 북군에 주도권을 내주고 끌려다니게 되었다. 리는 27,000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북군의 피해는 약 30,1000명이었다<ref>Sears, p. 498. 게티스버그 전투의 손실에 더해서 북쪽으로의 행군과 철수 기간동안기간 동안 약 4,500명의 손실이 발생했었다. </ref>. 남부 입장에서는 견뎌내기 힘든 손실이었다. 그리고 게티즈버그 전역은 애초 리가 목적한 바를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 원정을 추진하게 된 원인이었던 빅스버그만 해도, 리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패한 다음 날인 [[7월 4일]]에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항복한 것이다.
 
그러나, 미드는 리가 탈출하게 내버려두었다고 비난을 샀다. 이것은 앤티텀 전투 후 조지 매클라렌의 상황과 같은 경우였다. 하지만 미드는 비록 리를 물리쳤다고는 하나, 신중한 선택이었다고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링컨의 압력으로, 그는 가을에 [[브리스톨 전역]]과 [[마인런 전투]]를 치렀다. 두 전투 모두 리를 패배시키려는 것이었으나, 두 번 모두 미드가 패했다. 미드는 게티즈버그에서 그의 행동과 포토맥 강에서 리에게 당한 패전으로 [[미국 상하원 합동 전쟁수행위원회]]에서 정적들로부터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