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복음화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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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의 교서 Inscrutabili Divinae에Divinae》에 의해 가톨릭 신앙의 확산을 촉진하고 비 가톨릭 국가들에서의 가톨릭교회 상황 통제를 관리하는 기구로서 포교성성이 설립되었다. 포교성성이 가진 역할에 내재한 중요성과 권한의 특별 범위로 말미암아 포교성성 장관 [[추기경]]은 '붉은 교황'으로 불리게 되었다.
 
[[식민주의|식민지 시대]] 초창기에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두 [[개신교]] 국가가 식민지 정복 활동을 넓혀가면서 원주민들에게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을 보급해나가자, 교황청에서는 상업제국의 결과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이 확장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실질적인 위협으로 인식하였다. 1648년, [[30년 전쟁]]의 종식과 더불어 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의 교파적 균형이 공식적으로 확립되어 영구히 정착하였다. 그러나 당시 유럽인들에 의해 탐험이 되고 있었던 광활한 [[아시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 지역들은 새로운 복음화 장소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