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해방 선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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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mancipation Proclamation.jpg|250px|섬네일|노예 해방 선언문]]{{에이브러햄 링컨}}
'''노예 해방 선언'''(奴隸 解放 宣言, {{llang|en|Emancipation Proclamation}})은 [[1863년]] [[1월 1일]]에 [[미국]]의 노예 해방에 관하여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발표한 선언이다. 그 당시 북부에 대하여 반란 상태에 있던 남부 여러 주(州)의 노예를 즉시 전면적으로 해방한다는 내용으로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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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9월 22일]], [[에이브러햄 링컨|링컨]]은 노예 해방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예비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1863년]] [[1월 1일]] 이후부터 미국 연방정부에 대해 반란 상태에 있는 여러 주의 노예를 전면 해방한다는 내용이다. [[델라웨어주|델라웨어]], [[켄터키주|켄터키]], [[메릴랜드주|메릴랜드]], [[미주리주|미주리]]의 경계 4주 및 [[테네시주|테네시]], [[버지니아주|버지니아]], [[루이지애나주|루이지애나]] 등 북군이 점령한 여러 주의 노예는 대상 밖이었다. 이는 점차적이며 유상적인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공화당 (미국)|공화당]] 내 보수파와 즉시 전면 해방과 노예주의 조기일소를 기도하는 진보파와의 타협적 선언이었으며, 동시에 전 세계에 북부의 명분을 표명하는 의도도 있었다.
링컨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선 노예제 폐지를 공약으로서 매우 열렬하게 지지하지는 않았는데, 남부 등의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허나 그런 링컨조차 거부감을 가진 남부는 그가 대통령이 되자 즉시 연방을 탈당하고 남북전쟁이 시작된다. 또다른 정치적 시각으로 보자면, 공화당 급진파 측에선 역으로 답답하다고 까이며 재선 저지 움직임도 일견 보이자 링컨이 이들의 불만을 달래고자 노예 해방 선언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허나 어찌됐든 링컨은 노예 해방을 선언하며 "나는 내 삶에서 내가 옳은 일을 한다는 확신을, 내가 여기 서명하는 지금 이 순간만큼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한편으론 남부의 군사 및 경제적 기초를 파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였다는 해석도 있다.
한편, 링컨의 선언으로 노예 해방 선언에서 제외된 몇몇 지역에서는 지방관의 선언에 의해 따로 노예가 해방되었다. 또한, 이는 남부가 노예를 부리는 것에 대한 북부 세력의 대외적인 비판으로, 전 미국인들이 노예 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여, 1865년의 헌법 수정에 의해 결국 모든 노예 해방의 기초가 되었다. 예비 선언 다음의 실제 선언은 [[1863년]] [[1월 1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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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당시에는 이 선언에 해당되는 남부 지방이 독립하여 있었기 때문에 이 선언은 법적 강제력을 가지지 않아, 북부의 남부 재통일 이후에도 한동안 남부에서는 노예제도가 합법적으로 유지되었으므로 유명무실한 선언이었다는
==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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