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탸오후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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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의 한자읽기에서 沟 (kō), 湖 (ko)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장단의 차이만 있다), 일본측 문서의 한자를 중국어 발음으로 읽어서 류타우거우(柳条沟)로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류탸오후(柳条湖)가 정확한 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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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탸오후 사건은 일본군이 용의주도하게 꾸민 첫번째 음모였다. 일본은 [[만주]]를 장악한 후, 중국 본토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오래전부터 꾸며왔다. [[장쉐량]]의 동북군이 주둔하고 있던 [[선양|펑톈]](현재의 선양)은 만주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리하여 이곳을 장악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가 되었다. [[류탸오후]]는 선양 부근이고 동북군의 본부와 가까웠기 때문에, 일본군이 중국측에 이 사건을 전가하여 진공하는 것이 용이했다. 그리하여 이 곳에서 사건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 사건을 꾸민 총책은 관동군 작전주임참모 [[이시와라 간지]]와 고급참모 [[이타가키 세이지로]]였다. 이것은 내각에도 비밀로 하고 그들끼리 꾸민 음모였다. 이시와라와 아타가키는 거사 장소로 류타오후를 선정하고, 펑텐에 있던 특무기관에서 근무하던 [[하나다니 다다시]] 소좌, [[이마다 신다로]] 대위, 그리고 펑텐헌병대장 [[미다니 기요시]] 중좌와 구체적인 계획을 꾸몄다. 그리고 현지에서는 폭파전문가인 가와모토 스에모리 중위가 거사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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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탸오후 사건
▲류탸오후 사건 폭파현장은 1931년 9월 18일 밤 22시 20분 경, 일본 관동군 후스타이(虎石台) 수비대 제2대대, 제3중대 류탸오후 분견대 대대장 가와모토 스에모리 중위는 1개분대를 펑톈 북쪽 약 7.5 Km의 류탸오후 [[남만주철도]] 노선에 파견하여 소형폭약을 장치한후 폭파시키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철도의 작은 부분이 폭파되었다. 또한 중국 동북군 군복을 입은 중국인 시체 3구를 현장에 방치하여, 이를 철도폭파가 중국인의 소행이라는 증거로 삼으려고 의도했다.
폭파후, 하시모토는 즉각 동북군 북부 사령부를 향해 사격하였고, 일본군 독립수비대에 "동북군의 중국군이 철로를 폭파하고 수비대를 공격했다"고 보고했다. 독립수비대는 이를 즉각 관동군 사령부에 보고했고, 이타가키 세이지로는 중국군을 향해 대응발포하고, 동북군 사령부와 펑톈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일본군의 동북군 사령부를 갑작스럽게 포격했으나,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동북군 제7여단은 무방비 상태였고, 어찌할바를 몰랐다. 동북군 사령관이었던 [[장쉐량]]은 휘하 부대에게 일본군의
==사건 영향==
이 사건은 일본의 전면적인
[[zh:柳条湖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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