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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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
=== 장쉐량과 동북군 ===
젊은 원수로 알려진 [[장쉐량]]({{zh|t=張學良|p=zhāng xué liáng|h=장학량}})은 중국 동북지방 즉, [[만주]]의 [[중국 군벌|군벌]]인 [[장쭤린]]({{zh|t=張作霖|p=zhāng zuò lín|h=장작림}})의 장남이었다. 1928년 장쭤린이 죽자 그 위치를 물려받은 장쉐량은 만주의 젊은 독재자 이자 군벌로 위세를 떨쳤는데 [[1931년]] 9월 본격적인 일본의 만주 침략이 시작되자 근거지를 잃은 장쉐량은 장제스에게 의탁하였다. 장제스는 장쉐량을 중국 중부지방에서 [[동북군]](만주군)의 지휘관으로 임명하고 [[홍군]]과의 [[국공내전]]의 부사령관으로 삼았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대장정]]으로 [[옌안]]을 수도로하여 동북군과 대치하고 있었는데 장쉐량 휘하의 동북군은 고향인 만주를 일본에 빼앗긴 상태여서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많았고 홍군과의 의미없는 소모전에 지쳐있었다. 특히 홍군은 동북군 포로들에게 지속적인 "항일선전"을 폈고 진짜 적은 같은 중국인인 [[홍군]]이 아니라 만주를 침탈한 일본군이라는 선전전을 폈고 이들이 다시 동북군으로 돌아와 동북군 사이에는 항일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장쉐량 자신도 홍군과의 접촉을 통해 좌익의 영행을 받았고 대 일본 전쟁에 소극적인 장제스의 난징정부의 "선 통일, 후 저항" 정책에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