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데나르데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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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네덜란드]], 그리고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통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전율하였고, 이는 그들로 하여금 프랑스에 대항하는 [[대동맹|동맹]]을 결성하게 만들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을 일으키도록 하였다. 동맹군의 사령관 [[말버러 공작 1세 존 처칠]](John Churchill, 1st Duke of Marlborough)과 그의 최고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보이 공작 외젠|사보이아의 외젠 공작]](Prince Eugène of Savoy)은 친한 친구사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프랑스군의 장군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방돔 공작 루이 조제프 드 부르봉]](Louis Joseph, duc de Vendôme)은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이었다. 하지만 [[부르고뉴 공작 루이 드 프랑스|부르고뉴 공작]](Duke of Burgundy)은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고 국왕 [[루이 14세]]의 손자라는 자신의 지위 덕분에 많은 이익을 보고 있던 인물이었다.
 
말버러 공작의 군대는 약 90,000명(112개 보병 대대와 197개 기병 대대)으로 추산되었는데, 이들은 [[브뤼셀]](Brussels)의 남부에 머물러 있었다. 외젠 공작은 현재 독일령인 [[코블렌츠]](Coblenz)에서 군대를 조직했다. 이 두 지역은 프랑스의 약 100,000명에 달하는 군대(130개 보병 대대와 216개 기병 대대)가 현재의 [[벨기에]]에 소속되어 있는 [[몽스]](Mons)에 집결돼 있는 것에 비하여,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