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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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ohann Strauss I (2).jpg|섬네일|200px|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 슈트라우스 1세'''({{llang|de|Johann Strauß I}}, [[1804년]] [[3월 14일]] ~ [[1849년]] [[9월 25일]])는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다. '왈츠의 왕'으로 불리는 같은 이름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버지다.<ref>본인은 '''왈츠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ref>
 
1819년 [[런너]]와 4중주단을 만들었으나, 1825년에는 독자적 악단을 창설하고, 다음해에 최초의 [[왈츠]]를 발표하였다. 1833년, 1837년의 유럽여행에서 이름을 알렸다. [[빈]] 풍의 왈츠 연주양식을 개척하여 [[폴카]]나 [[카드릴]]도 빈 적인 세련된 감각이감각의 있는 것으로작품으로 만들었다. <안넨 폴카>, <라데츠키 행진곡> 등 외에 많은 춤곡을 작곡하였다. 빈풍의 춤곡의 기초를 만들었다.
 
누구에게나 다정한 느낌을 주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도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이 그와 그의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요한]]·요셉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아들들에게 음악을 하지 못하게 했지만 특히, 장남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그를 능가하는 왈츠 작곡가로 성장했다. 이에 그는 분노했고 말년에는 자신의 아들과 음악으로 경쟁을 해야만 했다.
 
==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