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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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삼계'''(吳三桂, [[1612년]] ~ [[1678년]])는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초기의 장수이다.
 
== 생애 ==
그는 [[청나라]]가 건국되었을 때, [[산하이관|산해관]](山海關)을 지키는 일을 맡았다. 농민반란군으로 명을 멸망시킨 [[이자성]](李自成)이 [[북경]](北京)을 물리칠 때 청나라 [[청 태종|태종]] 홍타이지에게 투항하였다. 그 후, 청나라 군대는 오삼계를 길잡이로 하여 관내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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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성조)가 한족을 탄압하는 정책을 실시하자, 운남에서 [[명나라]]를 다시 건국한다는 명분을 세워 군사를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평남왕 [[상가희]](平南王 尙可喜)와 정남왕 [[경정충]](靖南王 耿精忠)이 오삼계의 쿠데타에 호응하는데, 역사에서는 이를 가리켜 “[[삼번의 난]](三藩之亂)”이라고 한다.강력한 군사로 [[섬서성]]과 [[하남성]], [[감숙성]]을 휩쓸었으며 곧이어 청나라 조정을 얕잡아 여겨 도성 [[북경]]으로의 진군을 멈추었다. 조정에게 숨돌릴 틈을 준 사이, 조정은 한족 출신 장군을 등용하여 엄청난 반격을 시작하였고 수 차례 패배를 겪었다.
 
== 최후 ==
1678년(강희 17년)에 삼번의 맹주 오삼계는 황제를 참칭하고 국호를 주(周), 연호를 소무(昭武)라 정하였으나 그 해 8월에 죽으니 향년 67세였다. 이로 인해, 오삼계군의 군세는 크게 약해졌고, 1681년(강희 20년)에 오삼계의 손자이자 오씨의 주나라의 두 번째 황제인 오세번이 곤명에서 자살을 함으로써 8년에 걸친 [[삼번의 난]]은 끝이 났다.
 
== 같이 보기 ==
* [[삼번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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