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시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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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1048/1056년
|사망일=1118년 8월 15일
|작위=[[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황제 목록|황제]]
|재위=1081년 4월 1일 - 1118년 8월 15일
|대관식=1081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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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Bizancio1081AD ko.svg|섬네일|알렉시오스 1세 집권 당시의 비잔티움 영토]]
'''알렉시오스 1세 콤니노스'''({{llang|el|Αλέξιος Α' Κομνηνός}}, [[1048년]]경 – [[1118년]] [[8월 15일]]) 또는 '''알렉시우스 1세 콤네누스'''({{llang|la|Alexius I Comnenus}})는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황제]](재위 : 1081년 – 1118년)이다.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군사적·재정적 부흥을 이끈 황제로 그의 치세 동안 제국의 영토가 넓어지고 안정을 찾았다. 특히 [[십자군]]의 혼란을 잘 극복하여 제국에 도움을 주었고 [[콤니노스 왕조]]를 굳건한 반석 위에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 생애 ==
=== 황제 등극과 집권 초기 ===
그는 요안니스 콤니노스와 안나 달라세나의 아들이었고 [[이사키오스 1세]]의 조카였다. 알렉시오스는 비잔티움의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기부터 무용으로 이름을 날렸다. 당시 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은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1071년부터 1081년까지 [[로마누스 4세]], [[미카일 7세]], [[니키포로스 3세]]로 이어지는 혼란기에 그는 유능한 군사활동으로 젊은 장군으로 이름을 날렸다. 두터운 [[콘스탄티노폴리스]] 민중의 신임을 바탕으로 어머니 [[안나 달라세나]], 부인 [[이리니 두케나]]의 가문인 막강한 두카스 가문의 지원을 얻어 무능한 전임 황제 니키포로스 3세에게서 1081년 24살의 나이로 제위를 양도 받는 데 성공했다.
 
즉위 직후 그는 여러 차례 외부의 침입에 직면했다. 맨처음으로 제국을 위협한 것은 [[이탈리아]] 남부의 [[노르만족]]이었다. 1081년 [[로베르토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은 [[일리리아]] 속주의 수도인 두라초(오늘날의 [[알바니아]]의 [[두러스]])를 침략했다. 알렉시오스는 즉각 [[베네치아 공화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에게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했다. 알렉시오스는 몇 차례 전투에서 로베르트에게 패했으나 베네치아 해군의 도움으로 결국 노르만족의 침략을 물리칠 수 있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 승리의 대가로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내에서의 광범위한 무역 특권을 얻었다.
 
=== 외부의 침입의 격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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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보기 ==
* [[비잔티움동로마 제국]]
* [[비잔티움 황제 연대표]]
* [[십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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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자=[[요안니스 2세 콤니노스|요안니스 2세]]<br />(재위 1118 - 1143)
|임기=1081년 - 1118년
|직책='''[[비잔티움 황제 연대표#콤니노스 왕조 (1081-1185)|비잔티움동로마 제국의 황제]]'''
}}
{{로마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