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민왕릉: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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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릉'''(恭愍王陵)은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봉명산]]의 [[무선봉]] 중턱에 자리한 2기의 무덤으로, 서쪽 것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무덤인 현릉이며, 동쪽 것이 왕비 [[노국공주]]의 무덤인 정릉이다. 이 일대의 지형은 풍수설에 잘 어울리는데, 무덤구역은 3개의 층단과 맨 아래의 경단으로 이루어졌다.공민왕은 [[1365년]] 왕비가 난산으로 죽자, 자신이 직접 주관하여 9년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벌였는데, 이 능의 건축과 설계는 당시 고려의 [[수학]], 천문지리, 석조건축물, [[조형예술]]의 수준이 집대성되었다.고려시대에 궁전·무덤 등의 건축물을 웅장하게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건축 구획을 여러 개의 층단으로 배치하던 수법을 도입하여, 제일 윗단에 봉분을 두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층단을 구성하면서 조각과 시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장엄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 개요 ==
이 일대의 지형은 풍수설에 잘 어울리는데, 무덤구역은 3개의 층단과 맨 아래의 경단으로 이루어졌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가 난산으로 죽자, 자신이 직접 주관하여 9년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이 방대한 무덤공사를 벌였는데, 이 능의 건축과 설계는 당시 고려의 [[수학]], 천문지리, 석조건축물, [[조형예술]]의 수준이 집대성되었다.고려시대에 궁전·무덤 등의 건축물을 웅장하게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건축 구획을 여러 개의 층단으로 배치하던 수법을 도입하여, 제일 윗단에 봉분을 두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층단을 구성하면서 조각과 시설을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장엄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글로벌세계대백과}}
[[분류:고려의 왕릉]]
[[분류: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