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벽: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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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벽'''({{zh|c=和氏璧|p=Hé Shì Bì}})은 고대 중국에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역사적 중요성을 발휘한 [[벽 (보물)|벽]](둥근돌 모양으로 비취 원석)이다.
 
《[[한비자]]》에 따르면 [[초 (춘추 전국)|초나라]] 사람 변화(卞和)가 강가에서 원석을 발견하여 문왕이 도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변화가 [[초 (춘추 전국)|초]] 여왕에게 원석을 바쳤으나 옥세공인이 가짜 돌이라고 판정을 내리자 분노한 여왕은 변화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여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다시 돌을 바쳤는데 이번에도 가짜라는 판정을 받고 나머지 한 다리도 잘렸다. [[초 문왕|문왕]]이 즉위하자 다시 옥을 바치려 했는데 다리가 없어 갈 수가 없자 변화는 원석을 안고 엉엉 울었다. 문왕이 이야기를 듣고 원석을 가져다 반으로 갈라 보니 과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빛깔을 가진 옥이 나왔고, 문왕이 그것을 잘라 도장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천자를 계승할때계승할 때 쓰였으나 도장을 찍는 용도는 아니었다. 문왕은 변화에게 봉록을 내려 여생을 편히 살게 했다.<ref>{{서적 인용|url=|제목=[[한비자]]|성=[[한비]]|이름=|날짜=|출판사=|확인날짜=|추신=和氏篇(화씨편)}}</ref> 그러나 초 여왕부터 문왕이 즉위할 때까지 간극이 60년이 넘는지라 (기원전 757년~기원전 690년) 진위여부는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 뒤 세월이 흘러 [[조 (전국)|조나라]] [[조 혜문왕|혜문왕]]의 손에 들어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진 소양왕]]이 화씨벽과 성 15개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욕심 많은 소양왕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었으나 그렇다고 거절하면 강대국인 진나라가 트집잡아 쳐들어올 판국이라 혜문왕은 딜레마에 빠졌는데, 이때 [[인상여]]가 직접 사신으로가 소양왕에게 화씨벽을 바친 뒤 다시 소양왕을 협박해 온전히 돌려받아옴으로서 훌륭하게 해결하여 재상이 되었다. 인상여가 빼앗길 번한 화씨벽으로 만든 옥새를 고스란히 돌려 받았기에 "완벽귀조"라는 말이 화씨벽에서 유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