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쇼 천황: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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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데이터 속성 추적}}
{{왕족 정보
| 이름 = 겐쇼 천황
| 원래 이름 = 元正 天皇
| 그림 = Dragon-Woman-During-Empress-Gensho.jpg
| 그림설명 =
| 서명 =
| 문장 =
| 문장설명 =
| 작위 = 제44대 [[일본 천황]]
| 재위 = 715년 10월 3일-724년 3월 3일
| 대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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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자 = [[겐메이 천황]]
| 후임자 = [[쇼무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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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상 = '''[[지태정관사]]''' [[도네리 친왕]] {{작게|(720년-7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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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리 = =
| = 히다카 (氷高/日高)
| 별호 =
| 연호 = [[레이키]] (霊亀), [[요로 (연호)|요로]] (養老)
| 묘호 =
| 존호 = =
| 시호 = '''한풍:''' 겐쇼 (元正)<br /> '''화풍:''' 야마토네코 타마미즈키요타라시히메노 스메라미코토 (日本根子高瑞浄足姫天皇)
| 능호 = 나호야마 서릉 (奈保山西陵)
| 출생일 = [[덴무 =천황]] 9년 ([[680년]]
| 출생지 = [[야마토국]] [[아스카]]
| 사망일 = [[덴표]] 20년 [[음력 4월 21일|4월 21일]] ([[748년]]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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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묘 = =
| 왕조 = [[야마토 왕권|야마토 왕조]]
| 가문 =
| 아버지 = [[구사카베 황자|오카노미야 천황]]
| 어머니 = [[겐메이 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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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인척 =
| 종교 =
}}
'''겐쇼 천황''' (元正天皇, [[680년]] ~ [[748년]] [[5월 22일]])은 일본의 제44대 [[천황]](재위: [[715년]] ~ [[724년]])이다. 일본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천황이며 황후나 황태자비가 아닌 황녀의 신분으로 천황이 된 첫 번째 여성이다.
 
아버지는 [[덴무 천황]]과 [[지토 천황]]의 아들인 [[쿠사카베노미코]]이고, 어머니는 [[겐메이 천황]]이다. [[몬무 천황]]의 누나이다. 휘는 '''히다카(氷高/日高)''' 또는 '''니이노미(新家)'''이다. 일본식 시호는 '''야마토네코타카미즈키요타라시히메노스메라미코토(日本根子高瑞浄足姫天皇)'''이다. 한풍 시호인 「겐쇼 천황」은 대대로 천황과 함께 [[오우미노 미후네]]에 의해 지어 올려졌다고 한다. 일본의 여제로써 5번째인데, 이전까지의 여제가 황후나 황태자비였던 반면, 결혼 경험은 없고, 독신으로 즉위한 최초의 여성 천황이다.
|작위 = 제44대 [[일본 천황]]
|재위 = 715년 10월 3일-724년 3월 3일
|대관식 =
|즉위식 =
|전임자 = [[겐메이 천황]]
|후임자 = [[쇼무 천황]]
|섭정 =
|재상 = '''[[지태정관사]]''' [[도네리 친왕]] {{작게|(720년-735년)}}
|수상 =
|총리 =
 
== 생애 ==
|휘 = 히다카 (氷高)
[[덴무 천황]]의 황태자였던 [[쿠사카베노미코]]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헤노히메미코 (훗날의 겐메이 천황)이다. 천황의 적손녀로 예쁨을 많이 받았는지, [[덴무 천황]] 11년 ([[682년]]) 8월 28일에 히다카노히메미코의 병으로 죄인 198명이 사면되었다. [[덴무 천황]] 12년 ([[683년]]), 3살 어린 동복 동생 카루노미코 (훗날의 [[몬무 천황]])이 태어났다.
|별호 =
|연호 = [[레이키]] (霊亀), [[요로 (연호)|요로]] (養老)
|묘호 =
|존호 =
|시호 = '''한풍:''' 겐쇼 (元正)<br /> '''화풍:''' 야마토네코 타마미즈키요타라시히메노 스메라미코토 (日本根子高瑞浄足姫天皇)
|능호 = 나호야마 서릉 (奈保山西陵)
 
아버지 [[쿠사카베노미코]]는 즉위하지 못하고, [[지토 천황]] 3년 ([[689년]])에 사망하여, 할머니 [[지토 천황]] 즉위 후, 동복 동생 카루노미코 (훗날의 [[몬무 천황]])가 [[몬무 천황]] 원년 ([[697년]])에 [[지토 천황]]으로부터 양위받아 천황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히다카노히메미코는 18세여서, 천황의 동복누나라는 입장이, 비혼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출생일 = 680년
|출생지 =
|사망일 = 748년 5월 22일
|사망지 =
|매장지 =
|능묘 =
 
[[게이운]] 4년 ([[707년]])에 [[몬무 천황]]이 붕어하고, 그의 남겨진 아이인 오비토노미코 (훗날의 [[쇼무 천황]])이 아직 어려, 어머니인 아헤노히메미코가 즉위하여, [[겐메이 천황]]이 되었다. [[와도]] 3년 ([[710년]]), [[헤이죠쿄]]로 천도했다. [[와도]] 7년 ([[714년]]) 1월 20일, 2품 히다카 내친왕에게 식봉 1천호를 주었다. [[와도]] 8년/[[레이키]] 원년 ([[715년]]) 1월 10일에 1품으로 품계가 올랐다.
|왕조 = [[야마토 왕권|야마토 왕조]]
|가문 =
|아버지 = [[구사카베 황자|오카노미야 천황]]
|어머니 = [[겐메이 천황]]
|배우자 =
|자녀 =
|친인척 =
|종교 =
}}
'''겐쇼 천황''' (元正天皇, [[680년]] ~ [[748년]] [[5월 22일]])은 일본의 제44대 [[천황]](재위: [[715년]] ~ [[724년]])이다. 일본 역사상 여섯 번째 여성 천황이며 황후나 황태자비가 아닌 황녀의 신분으로 천황이 된 첫 번째 여성이다.
 
[[레이키]] 원년 9월 2일, 황태자인 조카 오비토노미코 ([[쇼무 천황]])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어머니인 겐메이 천황으로부터 양위를 받아 즉위했다. 『속일본기』에 있는 겐메이 천황의 양위 조서에는 "하늘의 세로 관인, 진전 완련하고, 화하에 실린 모습(天の縦せる寛仁、沈静婉レンにして、華夏載せ佇り)"이라면서 "자비롭고 침착하며, 아릅답고 아름답다(慈悲深く落ち着いた人柄であり、あでやかで美しい)"고 기록되어 있다.
즉위 전의 이름은 ''히다카노 황녀''(氷高皇女)이다. [[구사카베 황자]]와 아헤 황녀(훗날의 [[겐메이 천황]])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남동생으로 [[몬무 천황]]이 있다.
 
[[요로 (연호)|요로]] 원년 (717년)부터 [[후지와라노 후히토]] 등이 중심이 되어, [[요로 율령]]의 편찬을 시작했다.
 
[[요로 (연호)|요로]] 4년 ([[720년]])에 [[일본서기]]가 완성됐다. 또, 이해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병으로 쓰러져 죽었다. 이듬해, [[나가야왕]]이 [[우대신]]에 임명되면서, 사실상 정무를 맡게 된다. [[나가야왕]]은 겐쇼 천황의 사촌이며, 여동생 키비 내친왕의 남편이었다. [[후지와라노 후히토|후히토]]의 장남인 [[후지와라노 무치마로|무치마로]]는 [[츄나곤]], 차남인 [[후지와라노 후사사키|후사사키]]는 아직 참의 (후에 [[내신 (일본)|내신]]이 됨)였다.
 
[[요로 (연호)|요로]] 7년 ([[723년]]), 전지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삼세일신법]]이 제정되었다. 이로써 [[율령제]]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요로 (연호)|요로]] 8년/[[진키]] 원년 ([[724년]]) 2월 4일, 황태자 ([[쇼무 천황]])에게 양위하고 태상천황이 되었다. 양위 조서에는 새로운 천황을 "아코(我子)"라고 불렀고, 양위 후에도 후견인으로서의 입장에서 [[쇼무 천황]]을 보좌했다.
 
[[덴표]] 15년 ([[743년]]), [[쇼무 천황]]이 병들어,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자, 상황은 다시 "아코(我子)"라고 부르며 천황을 옹호하는 조칙을 내렸고, 이듬해에는 병든 천황의 묘다이로써 [[나니와쿄]] 천도의 칙을 내렸다. 말년의 상황은 병이 잦아 정무를 행하지 못하고, 불교 신앙으로 기울기 일쑤였던 [[쇼무 천황]]을 대신해 [[타치바나노 모로에]]ㆍ[[후지와라노 나카마로]] 등과 정무를 수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 가족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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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생 : [[일본]] 제42대 [[몬무 천황]](文武天皇, 683~707)
*** 조카 : [[일본]] 제45대 [[쇼무 천황]](聖武天皇, 701~756)
** 여동생 : 키비내친왕키비 내친왕(吉備内親王, ?~729)
** 매부 : [[나가야 왕|나가야왕]](長屋王, 684?~729)- 같은 덴무 천황의 자손으로 사촌 관계였다
 
== 생애능ㆍ영묘 ==
[[파일:Tomb of Empress Gensho.jpg|섬네일|나호야마노니시노릉]]
[[707년]] 남동생 [[몬무 천황]]이 죽자 어머니 [[겐메이 천황]]이 황위를 이었다. 본래 황위를 계승해야 할 몬무 천황의 아들 오비토 황자(훗날의 [[쇼무 천황]])가 [[714년]] 황태자로 임명되었으나 너무 어렸기 때문에 겐쇼 천황이 어머니로부터 양위를 받아 천황이 되었다. 오비토는 그대로 겐쇼 천황의 황태자로 봉해졌다.
[[파일:Signboard in front of Tomb of Empress Gensho.jpg|섬네일|나호야마노니시노릉 앞의 팻말]]
[[몬무 천황]] 및 [[쇼무 천황]]에게 딸들을 시집보낸 [[후지와라 후히토]]는 겐쇼 천황 치세 중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신하로 [[720년]] 병사했다. 그의 사후 [[덴무 천황]]의 황손으로 겐쇼 천황의 사촌인 [[나가야 황자]]가 출세를 거듭하며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로 인해 후히토의 네 아들들과 나가야 황자는 대립하기 시작했고 겐쇼 천황이 [[쇼무 천황]]에게 양위하고 난 뒤에도 갈등의 배경이 되었다.
능은 [[궁내청]]에 의해 [[나라현]] [[나라시]] 나라사키쵸에 있는 '''나호야마노니시노릉'''으로 치정되었다. 궁내청 상의 형식은 산릉이다.
겐쇼 천황은 양위 후에도 상황으로서 쇼무 천황의 후견인 역할을 했으며 병석에 눕는 일이 잦은 그를 대신해 정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황궁에서는 [[궁중3전]]의 하나인 [[황령전]]에서 다른 역대 천황ㆍ황족과 함께 천황의 영을 모시고 있다.
그녀의 치세 중인 [[720년]] 일본의 첫 역사서 [[일본서기]]가 완성되었다.
 
== 각주 ==
{{역대 일본 천황}}
{{전거 통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