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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여산(礪山) 6세 밀직공파(密直公派). 고려의 문신. [[상장군]]을 지낸 송염(宋琰)의 아들이다.
1298년([[충렬왕]] 24)에 [[하정사]](賀正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300년에 [[좌승지|좌부승지]]가 되었다가 이듬해 [[좌승지]]가 되었다.
1303년에 [[밀직사사|밀직부사]]<ref name="밀직사사">고려(高麗) 시대(時代) 왕명(王命)의 출납(出納), 궁궐(宮闕)의 경호 및 군사(軍事) 기밀(機密) 따위에 관(關)한 일을 보던 관청(官廳)인 밀직사의 종2품(從二品) 벼슬. 25대 충렬왕(忠烈王) 1(1275)년에 추밀원사를 고친 이름.</ref>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이듬해 전왕(前王)인 [[충선왕]]의 귀국을 방해한 죄로 원나라에 압송되었다가 그해 8월에 귀국하였고, 그해 12월에 동지(冬至)[[밀직사사]](密直司使)<ref name="밀직사사">고려(高麗) 시대(時代) 왕명(王命)의 출납(出納), 궁궐(宮闕)의 경호 및 군사(軍事) 기밀(機密) 따위에 관(關)한 일을 보던 관청(官廳)인 밀직사의 종2품(從二品) 벼슬. 25대 충렬왕(忠烈王) 1(1275)년에 추밀원사를 고친 이름.</ref>로 다시 하정사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305년에 원나라 성종이 죽고, 원의 황위를 놓고 다투던 중 무종이 즉위하였고, 이때 [[밀직사사]]<ref name="밀직사사">고려(高麗) 시대(時代) 왕명(王命)의 출납(出納), 궁궐(宮闕)의 경호 및 군사(軍事) 기밀(機密) 따위에 관(關)한 일을 보던 관청(官廳)인 밀직사의 종2품(從二品) 벼슬. 25대 충렬왕(忠烈王) 1(1275)년에 추밀원사를 고친 이름.</ref>가 되어 그해 왕이 원나라에 가고자 하므로 따라가려고 하였으나 조적(曺頔)이 왕에게 말하기를, "상국(上國)에게 죄를 지었으니 마땅히 호종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함으로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주까지 따라가서 함께 가기를 청하여 다만 따로 가는 것을 허락받아 원나라에 가게 되었으나 [[충선왕]]은 무종의 황위 도모를 도운 공적과 그 세력의 힘으로 귀국을 방해하고 [[계국대장공주]](薊國大長公主)를 서흥후(瑞興侯) 전(琠)에게 개가시키려고 한 죄를 물어 서흥후 전·왕유소(王維紹)·한신(韓愼)·송린(宋璘)·송균(宋均)·김충의(金忠義)·최연(崔涓) 등과 함께 원나라의 서울(大都)에서 참형을 당하였다.
 
==밀직공파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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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밀직사(密直司)===
고려(高麗) 때, 왕명(王命)의 출납(出納), 궁궐(宮闕)의 경호 및 군사(軍事) 기밀(機密) 따위에 관(關)한 일을 보던 관청(官廳). 성종(成宗) 때 중추원(中樞院)으로 출발(出發)하여 충렬왕(忠烈王) 초기(初期)에 이 이름으로 고쳤음. 충선왕(忠宣王)이 잠깐 광정원(光政院)으로, 공민왕(恭愍王)이 잠깐 추밀원으로 바꾸기도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