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63년 1월 21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전라북도]] [[전주시]]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관찰사(觀察使)의관찰사의 소재지(所在地)였던소재지였던 전주에는 시가지를 둘러싼 성곽(城郭)이성곽이 초기부터 있었으며, 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문이 있었는데 [[조선 선조|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에 모두 파괴되었다.
성곽과 성문이 다시 수축(修築)된수축된 것은 [[조선 영조|영조]] 10년(1734년)이며 이때 남문(南門)을남문을 명견루(明見樓)라명견루라 하였다. 그러나 명견루는 영조 43년(1767) 큰 화재로 불타버렸다. 현재의 문루는 그 이듬해에 당시의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재건한 것으로 풍남문이란 이름도 이때 붙인 것이다. 그후 [[조선 순종|순종]] 융희(隆熙) 원년(元年)(1907년) 도시계획의 일환(一環)으로일환으로 성곽과 성문은 모두 철거되고 이 풍남문만 남게 되었다.
풍남문은 그후 [[종각(鐘閣)]], [[포루(砲樓)]] 등이 일부 헐리고 지면이 묻히는 등 그 옛모습이 크게 훼손 되었는데 지난 1978년부터 3년간의 보수공사로 다시 원 모습이 드러나게 되었다.
아래층 내부에 전후 두줄로 4개씩 세운 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위층이 변주(邊柱)로 되는데 이러한 기둥배치는 우리나라 문루건축(門樓建築)에서는 희귀한 양식이다. ▼
▲아래층 내부에 전후 두줄로 4개씩 세운 기둥이 그대로 연장되어 위층이 변주(邊柱)로모서리 기둥으로 사용이 되는데 이러한 기둥배치는 우리나라 문루건축(門樓建築)에서는문루건축에서는 희귀한 양식이다.
{{대한민국문화재}}
[[분류:대한민국의 보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