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노미야 지카코 내친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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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노미야 지카코''' [[내친왕]](和宮親子内親王, [[1846년]]~[[1877년]])은 [[에도 시대]]말 [[닌코 천황]](仁孝天皇)의 제8황녀이자 [[고메이 천황]](孝明天皇)의 이복동생으로 [[도쿠가와 막부]] 제14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정실부인이 되었다.
== 생애 ==
=== 유소녀기 ===
[[1846년]] 윤5월 10일 [[닌코 천황]]의 딸로 태어났다. 생모는 곤노다이나곤(權大納言) 하시모토 사네히사(橋本實久)의 딸인 쓰네코(經子)이다.
가즈노미야가 태어났을 무렵 이미 닌코 천황이 사망하여 외가인 하시모토 가문에서 양육되었다.
[[1860년]] 2월, 아리스가와 친왕과의 결혼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가쓰라노미야 저택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고메이 천황]]에게서 [[도쿠가와 이에모치|이에모치]]와의 결혼을 명받게 된다.
=== 공무합체 및 결혼 ===
1862년 3월, 에도성에서 이에모치와 결혼식을 치르고 가즈노미야가 이에모치에게 강가(降家)<ref>하가(下家)의 일본식 표현으로 왕녀가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을 뜻함</ref> 하는 것으로 [[공무합체]]가 이루어졌다.
가즈노미야는 [[오오쿠]]에서 [[소토리시마리]]인 [[다키야마]](瀧山), 혼슈인([[도쿠가와 이에사다]] 생모),[[덴쇼인]](이에사다 정실) 등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가즈노미야 및 그를 수행하는 시녀들은 천황가의 관습을 고집하고 (일례로 천황의 허가 없이는 겨울철이라도 버선을 신지 않은 맨발로 다님), [[오오쿠]] 쪽에서도 가즈노미야 일행에게 불손한 대우로 응답하여 당초에는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훌륭한 인품으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잘 이해했던 이에모치의 노력으로 양쪽이 화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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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조정에서는 무가 관습대로 그녀를 장군정실의 호칭인 “미다이사마”(御台様)라고 불렀지만, 지카코는 이를 거부해 “가즈노미야 사마”(和宮様)라고 부르게 했다.
=== 이에모치 사망 이후 ===
1866년에 남편 이에모치가 [[오사카 성]]에서 사망하자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세이칸인노미야(靜寬院宮)라는 법명을 받았다. [[보신 전쟁]]때에는 [[메이지 천황]]에게 편지를 써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구명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1868년 4월 메이지 정부군에게 [[에도 성]]을 내주게 되어 짓세인(이에모치의 생모)와 함께 다야스(田安)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이후 쿄토로 돌아오지만, 도쿄로 거처를 옮기는 메이지 천황을 따라가 다시 도쿄에 거주하였다. [[가쓰 가이슈]] 저택에서 [[덴쇼인]]과 식사를 같이한 후 사이가 좋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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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문헌 ==
* <에도의 여행자들(江戶の旅人)> (다카하시 치하야 (高橋千劒破) 지음 | 김순희 옮김)
[[분류:1846년 태어남]]
[[분류:1877년 죽음]]
[[분류:에도
[[분류:일본 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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