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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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초나라에서 오나라로 ===
오운의오자서의 부친 오사는 초나라 태자 건의 스승(태부)이었다. 비무극은 소부였는데, 태자에게 충심을 다하지 아니하였다. 초나라 군주 평왕은 비무극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진나라 군주 애공의 여동생을 데리고 와 태자의 아내를 삼도록 하였다. 비무극은 애공의 여동생이 미인임을 알고 평왕에게 그녀를 취하고 태자에게는 다른 규수를 맺어달라고 아첨하였다. 평왕은 그의 말에 동의하여 애공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삼고 총애하였다. 애공의 여동생이자 진나라 공주는 왕자 진을 낳았다.
비무극은 평왕이 승하하고 태자가 즉위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까 두려워 평왕에게 태자를 헐뜯는 발언을 자주 일삼았다. 평왕은 태자를 차츰 멀리하였고, 나중에는 태자를 변방 성보으로성보읍으로 보내 방위하도록 명하였다.
비무극은 평왕에게 태자가 진나라 공주의 일로 원한을 품고 있고 반란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헐뜯었다.
평왕은 태자의 스승 오사를 불러내어 캐물었다. 오사는 평왕에게 어찌 간신의 말 몇마디에 골육 같은 자식을 내치려 하냐며 충언하였다. 이에 비무극은 다시 한번 태자와 오사를 비난하며 평왕이 태자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태자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부추겼다.
마침내 평왕은 오사를 옥에 가두고 변방 성보읍에 사마분양을 보내 태자를 암살토록 하였다. 하지만 사마분양은 성보읍에 당도하기 전 태자에게 사람을 보내 태자가 몸을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 태자는 송나라로 망명하였다.
 
비무극은 평왕에게 오사의 두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장차 초나라의 후환이 될 것이라며 험담하였다. 평왕은 사람을 보내 오사에게 오사의 두 아들을 부르면 살려 주겠다고 거짓 약속했다. 이에 오사는 장남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자신이 부르면 반드시 올 것이라 하였지만 차남 오운은오자서는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이니 미리 깨닫고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왕은 오상과 오운에게오자서에게 만약 온다면 오사를 살려 줄 것이지만 오지 않는다면 오사를 죽이겠다고 전하였다. 오상이 오사가 있는 곳으로 가려 하자 오운이오자서가 말하였다. "평왕이 우리를 호출한 이유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들이우리 형제가 훗날 초나라에 후환이 될까 두려워서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거짓으로 우리 형제를 불러내 모두 죽이려는 속셈입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죽음에 어떠한 보탬도 되지 않는 행위입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망명한 다음 힘을 빌려 아버지의 치욕을 씻어야 합니다." 이에 오상이 대답하였다. "나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부르심에도 아버지께 가지도 않고 훗날 복수에 성공하지도 못한다면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는 큰 인물이니 내 대신 아버지의 복수를 완수해다오." 오상은 결국 사자에게로 갔다. 사자는 오운마저오자서마저 붙잡으려 하였지만 오운이오자서가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기에 감히 접근하지 못하였다. 오운은오자서는 태자 건이 망명해 있던 송나라로 망명하여 그를 섬겼다. 오상이 초나라에 도착하고 오사와 장남 오상은 평왕에게 살해됐다. 오사는 죽기 전 오운이오자서가 아직 살아남은 즉 훗날 초나라는 전란에 휩싸일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홀로 남은 오운은오자서는 복수를 맹세하고, 송(宋)나라에서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 하여 태자 건과 함께 [[정나라|정(鄭)나라]]로 탈출한다. 정나라로 간 태자는 [[진 (희성)|진나라]]의 부추김으로 반역을 하려고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역으로 정 정공에게 살해된다. 오자서는 태자의 아들 승과 함께 이번에는 오(吳)나라로 도망쳤다. 오나라로 간 오운은오자서는 [[오 (춘추)|오나라]] 왕의 종친 광(光)을 섬겼다. 광은 원래 왕이 되었어야 되는 사람이었는데, 사촌 동생 [[오 요왕|요]]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오운은오자서는 전제(專諸)를 공자 광에게 소개하여 광의 오왕 즉위를 준비하였다. 5년 후 초 평왕이 죽었다. 오운은오자서는 이제 복수할 대상이 사라졌으니 어찌해야 하냐며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한편, 오왕 요는 초나라의 국상을 틈타 초나라를 공격했지만 실패하였다. 이때 오나라의 도성이 비게 되었고, 공자 광은 전제를 시켜 요를 암살하였다. 그리고 공자 광이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니,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閭)이다.
 
[[손무]]와 함께 [[합려]]를 보좌하여 강대국으로 만든 뒤, 기원전 506년에 [[초 (전국)|초나라]]에 병사를 일으켜, 그 수도를 함락시켰다. 평왕은 이미 죽은 뒤였기 때문에 오자서는 묘를능을 파헤치고 평왕의 시체가 썩지 않았음을 기뻐하며 두 눈을 파고 평왕의 시체를 300번이나 채찍질하여 원한을 풀었다.(굴묘편시의 고사) [[사기 (역사서)|사기]] 오자서 열전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예전의 친구였던, 신포서는 너무 가혹하다고 비난했지만, 오자서는 “나의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머니, 도리를 역행할 수밖에 없다.({{lang|zh|吾日莫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고 하였다고 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의 사자성어 일모도원(日暮途遠)은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신포서는 진나라 군주 애공에게 원군을 요청하였지만, 애공은 초 평왕이 자신의 여동생을 후궁으로 삼은 일을 거론하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신포서가 7일간 도성 앞에서 단식농성을 하였다. 이에 감복한 진 애공은 구원군을 보내는 것을 허하였다. 비록 수도 영이 함락되었지만, 초나라는 강대한 국가였고 여기에 진나라의 구원군까지 더해지자 오군의 기세도 한풀 꺾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합려의 동생 부개가 도성이 빈 틈을 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결국 오군은 철군을 결정하게 된다.
 
그 후, 강대해진 [[오 (춘추)|오나라]]는 패권 야욕으로, 월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지만, 월왕 [[구천]]의 참모 [[범려]]와 지혜 대결에서 패하고, 오군은 월나라에 대패하게 된다. 이 때의 상처로 합려는 사망하게 된다.